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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해, 소에 얽힌 故事成語

2020년 경자년(庚子年) ‘쥐의 해’가 가고 신축년(辛丑年) ‘소의 해’가 왔다. 새해도 어김없이 띠에 얽힌 고사성어를 살피는 것으로 올해 실협뉴스를 시작하고자 한다. 소 뒷걸음 치다가 쥐잡더라고 코로나로 엉망이 된 쥐의 해를 깔끔히 날려버리고 지구상 모든 소의 공덕을 빌어 코로나 마왕을 정복하는 한 해를 꿈꿔보자.

역사적으로 인간과 가장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짐승이 있다면 개와 소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개는 아예 인간과 붙어살며 애완동물의 구실을 할 뿐 생산활동은 거의 없다. 생산하는 것이라고는 유일하게 개똥인데 아무짝에 쓸모없고 어쩌다 약에 쓰려고 하면 그나마 없다. 오죽하면 이 상황을 빗댄 속담까지 있을까.

그러나 소는 다르다. 인간과 아주 가까이 있으면서 쉼없이 일하는데 말 그대로 “소처럼 일한다.”

문명의 첨단을 걷는다는 현대에도 수많은 나라의 시골에서 여전히 소는 논밭을 갈고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고 있다. 만약 소가 없다면 농사는 생각할 수도 없다. 또, 우유는 어디서 구하며 소가죽과 소고기 등 입고 지니고 먹는 것의 대다수를 어디서 얻을 것인가. 소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 다.

이 대목에서 어디 하나 버릴 곳이 없어 소꼬리까지 곰탕으로 먹어치우는 우리 선조들의 음식 문화에 경의를 표하고 싶어진다. 가장 고마운 점은 소의 식성이 인간의 식량과 경쟁관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냥 풀만 먹고 산다. 모든 집짐승은 인간의 먹거리와 겹치며 경합이 붙지만 소는 예외다. 문화 인류 학자들은 가축의 먹거리와 인간 먹거리의 경쟁 관계 여부를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여기며 연구를 집중해 왔는데 소의 이 점을 최대의 덕목으로 꼽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고마운 짐승을 놓고 속담을 비롯한 많은 우리네 표현에서 부정적 이미지 일 색인 것은 참으로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소가 들으면 매우 서운할 속담 몇개 훑어보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쇠귀에 경읽기”가 일상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속담일 것이다. 한자성어로는 우이독경(牛耳讀經)으로도 많이 쓴다. 아둔해서 잘 알아먹지 못하는 경우를 빗대는 것으로 누구나 다 아는 표현이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처음부터 말이 안되는 표현이다. 짐승이 사람 말을 어찌 알아듣겠나. 더구나 인간 본인들도 못알아먹는 경전을 들려주다니 소보고 뭘 어쩌라고. 소가 아니라 침팬지인들 이해하는가. 그런데 하필 소를 빗대서 이런 모욕적인 속담이 회자된다는 것은 소가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리석은 것이다.

“소 궁둥이에 꼴던진다”는 속담은 또 어떤가. 꼴은 소 먹이거리인 풀을 말한다. 그런데 소 엉덩이에 풀을 던져도 아무 반응이 없는데서 소처럼 둔해 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비난할 때 쓰는 속담이 된 것이다. 위의 쇠귀에 경읽기와 마찬가지 의미다. 못된 짓만 골라하는 인간에게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가 있고 심하게 고집이 센 사람에게 “소 심줄같이 질긴 놈”, “소 죽은 귀신”등의 속담도 있다. 우직한 소의 이런 습성이 묵묵하고 부지런히 노동력을 제공하는 원천임을 안다면 이런 가당찮은 속담들은 당장 사라져야 마땅하겠거니와 자꾸 이 말같지 않은 속담을 입에 올리면 “지나가는 소가 웃는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간다. 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표현도 있으나 이번만 사용을 예외로 해둔다.

■ 九牛一毛(구우일모)

“아홉마리의 소에서 터럭 하나”라는 말 그대로의 의미다. 극히 많은 것들 중에서 아주 적은 것이나 보잘 것 없는 것을 표현할 때 종종 사용한다.

 

 

 

 

 

 

 

 

 

 

 

 

 

 

 

매우 쉬운 사자성어이지만 유래를 아는 사람이 드물어 소개한다. 한나라 7대 황제인 무제 시절, 이릉 (李陵)이라는 유명한 장군이 있었다. 흉노와의 여러 차례 싸움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바 있다. 그러다가 또 한차례 흉노 정벌을 위해 출정했는데 군사 5천에 불과한 장군은 10배가 넘는 흉노의 기병에 맞서 용맹하게 싸우다가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결국 패했고 휘하 병사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흉노에게 항복을 하게 된다. 이 소식을 듣고 무제는 대노하여 그의 일족을 참형에 처해버린다.

아무도 제대로 장군을 변호하는 사람이 없는 분위기에서 이때 저 유명한 불후의 명저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 (司馬遷)이 나서 장군을 변호했다. 한무제는 한사군을 설치해 우리에게는 달갑지않은 인물이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최대한의 영토를 넓혔고 유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고 학문 발전에도 힘쏟은 명군 (明君)이다. 그런 무제도 어떤 판단력의 실수인지 이릉 장군의 가족을 참살하고 그를 변호한 사마천도 궁형(宮刑)에 처해버린다. 궁형이란 남성을 거세하는 치욕스러운 형벌이다. 사마천은 그러나 “내가 법에 따라 사형을 받는다 해도 그것은 아홉 마리의 소 중에서 털 하나 없어지는 것과 같을 뿐이다”라고 담담히 받아들이며 동양 최고의 역사서인 ‘사기”를 완성해 후대에 길이 이름을 남기고 있다.

■ 對牛彈琴(대우탄금)

“소를 마주하고 거문고를 탄다”는 의미다.

 

 

 

 

 

 

 

 

 

 

 

 

 

 

중국 전국시대에 공명의(公明儀)라는 거문고를 잘 타기로 소문난 연주자가 있었다.  이 자가 어느 화창한 날 아침에 따스한 햇살을 보자 근처 언덕에 올라 거문고를 타고 싶어졌다. 그의 앞에는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가 한마리 있었다. 그는 자신의 연주 실력을 과신한 것인지 소마저도 감동시키겠다는 마음에 가장 애절한 곡을 하나 연주했다. 마지막 음을 튕긴 후 만족스러워 했지만 소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그는 다른 곡을 연주하고 그래도 반응이 없자 연거푸 계속 다른 곡들을 탔다. 하지만 여전히 소는 무반응에 되새김질만 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소를 마주하고 거문고를 탄다’는 뜻의 사자성어 대우탄금(對牛彈琴)의 유래다. 서두에 소개한 우이독경과 같은 의미이니 앞으로 대화중에는 식상한 우이독경 대신 대우탄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자. 상대가 이해를 못하면 그때서야 나즈막하게 “‘우이독경’ 이라는 의미야”라고 일러주면 된다. 그런데도 상대가 못알아들으면 할 수 없고…

■ 吳牛喘月(오우천월)

“오나라 소가 달을 보고 숨을 헐떡인다”는 의미다.

 

 

 

 

 

 

 

 

 

 

 

 

 

 

 

별 것도 아닌 것에 지레 겁먹고 허둥거리는 사람에게 쓰면 딱이다. 비슷한 말로 경궁지조(驚弓之鳥)가 있다. 화살만 봐도 새가 놀란다는 의미다. 우리 속담으로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표현이 있다. 중국 진(晉)나라 황제 무제의 신하 만분(滿奮)이라는 자가 황제 앞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 북쪽 창문 너머로 바람 부는 모습이 어른거려 원래가 약골이었던 그가 추워하며 떨었다. 황제가 저것은 유리창이라는 것으로 바람이 통하지 않아 추워할 까닭이 없다고 놀리자 황공해하며 “오나라 소가 달을 보고 헐떡인다는 말이 바로 신(臣)을 두고 한 말입니다.”라고 말했다는데 여기서 비롯됐다. 당시에는 유리창이 귀했던 시절이었고 만분은 이날 처음으로 유리창을 대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소뿔 바로잡다가 소죽이는 우를 범한다는 교각살우(矯角殺牛), 소잡는데 쓰는 칼을 닭잡는데 사용한다는 우도할계(牛刀割鷄) 등 주옥같은 사자성어들이 즐비하지만 생략하고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사저성어를 끝으로 소개한다.

■ 우의마의(牛意馬意)

“소의 뜻, 말의 뜻”이라는 천하에 쉬운 단어로 구성된 사자성어이나 어원을 따지고 보면 씁쓸하다.  

때는 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된 1956년. 대한민국 3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5월 15일에 치르는 대선에 앞서 이미 두번을 해먹은 이승만이 재출마했다. 헌법 부칙의 중임 제한 조항으로 원래는 나올 수도 없었으나 『초대 대통령에 한해서는 예외로 한다』는 낯간지러운 내용을 담아 멀쩡한 헌법까지 2년 전인 1954년에 일찌감치 개정해놨다. 그나마 그 무리한 헌법 개정안은 딱 한표가 모자라 부결됐었지만 그러나 이승만이 누구시던가. 숱한 그의 똘마니 중 그 누구도 감히 생각지 못한 저 유명한 사사오입(四捨五入)반올림을 인간 머리수에 적용시킨 것이다. 부결 헌법안을 하루밤 고민끝에 다음날 가결로 일거에 둔갑시키는 신통술에 세계 수학계까지 감탄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그런데 참으로 웃기는 것이 헌법까지 고쳐가며 80이 넘은 노인네가 세번을 대통령 해먹고자 했으면 조용히 출마하면 될 일을 선거 두달을 남겨놓고 갑자기 출마포기 선언을 해서 나라가 2년만에 다시 한번 시끌벅쩍해진다. 내막은 이렇다. 56년 3월 5일 자유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에서 이미 수하들이 짜 놓은 각본대로 후보 지명이 됐다. 그런데 너무도 놀랍게 “이번 제 3대 대통령에는 좀더 박력있는 인사가 나와 국토통일을 이룩해 주기 바란다”라며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워낙 노령이라 노망이 난 것인가, 아니면 진심으로 물러나려는 것인가 아리송한 가운데 언론과 당시 야당 라이벌로 출마한 조봉암(曺奉岩 1899~1959 호는 竹山)은 진심으로 믿은 듯 하다.

그러나 역시나였다. 꼭 하루만인 3월 6일 부산에서부터 관제 데모가 터져나왔다. 제발 나오시라는 탄원이자 읍소였다. 그로부터 수일 후인 3월 10일 이승만은 외국 기자들 앞에서 “국민이 원한다면 무엇이든 하겠으며 자살을 원한다면 자살이라도 하겠다”고 호기롭게 밑자락을 깐다.

이로부터 관변단체들의 친위 데모는 겉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그 백미(白眉)는 3월 12일에 절정에 달했는데 동원된 노동자와 농민들이 경무대(현 청와대) 앞으로 800여대의 우마차(牛馬車)를 끌고 행진을 한 것이다. 60년대 말까지도 우리나라 길가에는 소나 말이 끌던 짐차가 다녔었다. 우마차조합이 있었을 정도였다. 다만 서울은 우차와 마차 차도 통행이 금지됐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도로교통법까지 위반하며 열혈 관제데모를 한 셈이다.

이를 본 한 언론인이 ‘민의’(民意)의 조작이 지나쳐 소와 말의 의견까지 동원시켰다는 야유를 담은 ‘우의마의’(牛意馬意)라는 말을 만들어 입에 올렸다. 표현의 촌철살인으로 이후 우의마의 정치라는 말이 의식있는 식자들 사이에 자조적으로 회자되기에 이르렀으니 추악한 한국 현대사가 만들어낸 웃픈 사자성어가 아닐 수 없다.

 

 

 

 

 

 

 

 

 

 

 

 

 

 

 

 

 

 

 

 

 

▲이승만과 그 하수인들이 벌인 희대의 정치쇼 우의마의(牛意馬意)퍼레이드

그렇게 노욕으로 찌든 독재자 이승만은 우의마의 덕분에 대통령을 다시 해먹었고 앞에 소개한 조봉암은 정적 1호로 지목돼 빨갱이로 몰아 사형을 시켜버렸다. 이승만의 철저한 추종자이자 골수 반공주의 자인 장택상도 죽산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열성적으로 증언했음에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이다.

소에 얽힌 우울한 대한민국 현대사는 이쯤해두고 소를 예찬한 최고의 글인 춘원(春園)이광수의 우덕송 (牛德頌) 한토막을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1925년 朝鮮文壇에 게재한 수필)

『소는 어떠한가…어디로 보더라도 덕성스럽고 복성스럽다. ‘음메’하고 송아지를 부르는 모양도 좋고, 우두커니 서서 시름없이 꼬리를 휘휘 둘러 ‘파리야 날라가거라, 내 꼬리에 맞아 죽지는 말아라.’ 하는 모양도 인자하고, 외양간 홀로 누워서 밤새도록 슬금슬금 새김질 하는 양은 성인이 천하사를 근심하는 듯하여 좋고… 세상을 위하여 일하기에 등이 벗어지고 기운이 지칠 때에 마침내 푸줏간으로 끌려들어가 피를 쏟고 목숨을 버려 사랑하던 자에게 내 살과 피를 먹이는 것은 더욱 성인의 극치인 듯하여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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