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의 해,

쥐에 얽힌 고사성어

새해도 어김없이 띠에 얽힌 고사성어를 살피는 것으로 올해 첫 실협뉴스 교양 상식을 시작한다. 2020년 올해는 경자년(庚子年) ‘쥐의 해’다. 한자로 서(鼠)가 쥐를 의미한다.

쥐의 해에 태어난 사람은 부유하게 산다고 한다. 부지런히 먹을 것을 구하러 다니는 쥐의 특성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이런 호의적 평가 이외에 쥐는 12간지의 동물 중에서 아마도 가장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동 물로 보인다. 실제로 병균을 옮겨 전염병이 돌게 하고 사람이 먹는 음식은 뭐든지 먹기 때문에 먹거리를 놓고 인간과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다. 그러니 좋은 소리 들을 구석이 하나도 없는 짐승이다.   

나라가 너무 가난해 온통 비위생적이고 불결했던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쥐에 대한 혐오감은 더 할 것이다. 천장에서 요란스럽게 지나가는 쥐떼의 움직이는 소리때문에 밤중에도 놀라거나 잠을 설 치던 것이 불쾌한 추억으로 아련히 떠오른다. 거기다가 하도 쥐가 많아 피해가 커 쥐약을 여기저기 놓으 면 죽어있는 쥐도 많았지만 잘못 먹고 죽은 고양이의 모습에서 충격으로 비명도 지르고.

칙칙한 추억은 이쯤 더듬고 고사성어로 넘어가기 전에 쥐에 얽힌 유명한 순 우리말 관용적 표현 하나의 유래를 살피자.

 

쥐뿔도 모르는 것이…유래

 

그렇게 너도 나도 한국사람이면 입에 달고 사는 “쥐뿔도 모른다”는 표현이건만 그 유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쥐꼬리나 쥐 x 도 아니고 있지도 않은 쥐의 뿔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해볼 만도 하건만… 한 부부가 손톱발톱을 깎고 문 밖에 버렸더니 쥐가 그것을 주워 먹고 남편으로 둔갑해, 진짜 남편은 쫓아내고 부인과 함께 살았더랜다. 억울한 진짜 남편이 어느날 도사를 만나 하소연하니 도사가 부적 하나를 써주며 고양이를 한마리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라고 일러줬다. 부적을 지니고 고양이 데리고 집에 들어가니 가짜 남편이 다시 쥐로 변했다. 안도와 분노가 뒤섞인 남편 왈 “쥐 x도 모르고 그 놈과 살았냐”고 아내에게 핀잔을 줬다. 쥐뿔도 모른다는 표현은 원래 쥐 그것도 모른다는 것이었는데 상스러울 수 있어서 ‘뿔’로 변한 것이다. 그런데 가소롭거나 작은 것을 낮춰서 상스럽게 표현 할 때는 “쥐 x만한 놈이 ~” 어쩌고 저쩌고 오늘날까지도 잘 쓰이고 있다. 그나 저나 쥐뿔도 모른다의 유래에 관한 위의 설명이 진짜냐며 반신반의하는 표정들이 떠오른다. 맞다. 여러 설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평생 함께 산 배우자의 신체 부위 특성도 잘 몰랐다는 근본 줄거리는 같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밝힌 자료에 나온다. 여기서 후대에 새끼를 친 표현이 ‘개뿔도 없는 것이… “ 되겠다.

■ 수서양단(首鼠兩端) [머리 首 쥐 鼠 두 兩, 끝 端]

 

 

 

 

 

 

 

 

 

 

 

 

 

 

 

 

쥐구멍에서 방금 나온 쥐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연상해서 나온 표현이다. 판단을 못하고 우왕좌 왕할 때 써먹으면 제격이다. 사자성어로 이보다 더 자주 사용되는 유사한 표현은 좌고우면(左顧右眄)이 다. “수서양단하지 말고.., 또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빨리 결단을 내리라”고 표현하면 꽤 유식해 보인다.   

유래는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 나온다. 쉽게 정리하면 기원전 전한(前漢)때 황제가 중히 여기는 두 고관이 있었다. 둘은 꽤나 라이벌 관계였는데 한쪽 집에서 파티가 열리자 라이벌의 친구가 함께 와서 주인하고 시비가 붙었다. 황제의 권위를 빌어 주인은 라이벌의 친구를 처형코자 했다. 그러나 황제도 판단을 못해 어사대부(지금의 검찰총장 정도)에 떠넘겼다. 그런데 어사대부도 입장이 곤란해 어물거리고 황제에 미루며 빠져 나갔다. 그러자 처형을 주장했던 그 고관이 퇴궐 후 어사대부를 조용히 불러 이렇게 핀잔을 줬다. “......  何爲首鼠兩端?” 왜 쥐새끼처럼 갈팡질팡 판단을 안내려줬느냐는 비난이었다. 수서양단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 나작굴서(羅雀掘鼠)  [새그물 羅 참새 雀 팔 掘 쥐 鼠]

그물로 참새를 잡고 땅을 파서 쥐를 잡아 먹으며 연명하는 처지라는 의미로 최악의 상황에 몰려 있을 경 우를 비유하는 표현이다.  

당(唐)나라 중엽, 장순(張巡)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황제에게 충직한 신하였고 뛰어난 무인이었으며 대의가 분명했다. 안록산(安祿山)의 반란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웠을 때 그는 수양이라는 곳을 수비하고 있 었다. 성을 지키는 군사는 겨우 3천여 명. 10만 명이 넘는 반란군을 대적하기는 터무니 없는 중과부적 (衆寡不敵)의 상황이었다.

장순은 숫자의 열세를 개의치 않고 죽을 각오로 성을 지켰다. 자신만만한 반란군들은 갖은 방법을 동원해 성을 공격하고 때로는 회유하며 항복을 요구했다. 그렇지만 그는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다. 반란군에 포위된지 수일이 지나자, 성 안에 비축해 놓은 군량미는 바닥났고, 보급도 되지 않아 점점 굶주림에 허덕 이게 되었다. 허기진 병사들은 나무껍질을 벗겨먹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물을 쳐서 참새를 잡아 먹기도 했으며, 땅을 파서 쥐를 잡아 먹기도 했다. 나작굴서라는 표현은 이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종말은 더 비감하다. 장순은 자식같은 병사들의 굶주림을 보다못해 자기 아내를 죽여 국을 끓여서 병사들 에게 먹이기까지 했다. 끝내는 성으로 진격해 들어오는 반란군의 포로가 됐고 항복을 요구하는 반란군들 을 향해 매섭게 호통을 치다가 목이 베어 최후를 마감했다. 사실 고사성어의 표현보다는 장순이라는 장수 의 의로움이 더 회자되는 역사에 남을 사건이었다.

■ 궁서설묘(窮鼠齧猫) [궁할 窮 쥐 鼠 깨물 齧 고양이 猫]  

 

 

 

 

 

 

 

 

 

 

 

 

 

 

 

 

 

 

쫓기는 쥐가 고양이를 문다는 뜻으로  궁지에 빠진 사람을 너무 괴롭히면 도리어 해를 입게 되는 상황을 일컫는 다.   

표현의 유래는 저 유명한 한무제(漢武帝 B.C 151 ~B.C 87))때이다. 당시 소금과 철을 국가 전매제도로 시행했다. 국방비 조달 등 나라 살림을 윤택하게 하고 권세있는 신하들과 지방 호족들의 발호를 억누르자는 일타쌍피 전략으로 두개의 근간 상품을 국가에서 전매하는 정책 변환을 한 것인데 소금과 철을 틀어쥐고 이권을 누려왔던 신하들과 호족들의 반발이 아주 거셌다.

이후 B.C 81년 소제(昭帝)가 제위에 올라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전매사업을 비롯한 국가 정책에 대한 시국 종합 대 토론회를 벌였다. 이때 전매사업을 놓고 논쟁이 두 파로 나뉘었다. 오늘날의 검찰총장격인 어사대부를 비롯한 공무원쪽은 전매제도를 적극 지지했다. 이들의 의식은 법가를 대표하고 있었다. 그러나 학자 진영에서는 망한 진시황의 진나라 사례를 들며 엄혹한 법치때문에 나라가 망했다며 나라 다스리는 근본을 예(禮)로 하자는 유가 사상을 들먹였다. 그러면서 나온 표현이 바로 궁서설묘(窮鼠齧猫)였다. 진시황때의 진나라 정책을 저 표현으로  빗댄 것이다.

■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중국 고유의 고사성어는 아니다.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나는 일을 대할 때 자주 입에 올리는 유명한 표 현인데 유래는 흥미롭게도 고대 로마이다. 계관 시인 호라티우스(Horatius, B.C 65~ B.C 8)의 다음 시 (詩)를 한문으로 의역한 것이 사용의 시작이라 한다. 『산(山)이 출산(出産)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경외 속에 특이한 어떤 것을 기대하며 사람들이 사방에서 달려와 모였다. 마침내 산이 출산을 하였다. 볼품없이 우스꽝스런 쥐가 나왔다.』  

태산은 우리네 시조 “태산이 높다하되…”그 태산이며 중국 산동성에 있다. 명산이 중국에 즐비하지만 태 산은 중국 황제가 하늘에 제사지내던 의미가 막중한 산이라 높고 큰 산의 상징이 되고 있다. 그 산이 큰 소리를 내며 흔들려(泰山鳴動) 뭔 일이라도 났으려니 숨죽이고 지켜 보는데 고작 쥐한마리(鼠一匹)가 나 온 것이다. 뭐 대단한 것이라도 있는 양 떠벌리거나 북새통 끝에 흐지부지되면 곧잘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이 표현에 어울릴 상황이 자고나면 매일 벌어지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 정치판이다. 그 중 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태산명동(泰山鳴動)하는 야당 의원, 요지부동(搖之不動)하는 장관, 그리고 서일필(鼠一匹)도 없다고  촌철살인(寸鐵殺人)하는 여당 의원.  2018년  10월 초의 국회 풍경이다.

70~80년대 대학 다닌 사람은 심재철(1958년 전남 광주생)이라는 이름을 누구나 다 안다. 80년 서울의 봄 당시 서울역 앞에 모인 15만 대학생의 시위를 이끌었던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다. 전두환 정권이 쿠 데타로 정권을 잡으면서 투옥되고 고문도 받고 모진 고생을 했다. 신군부의 김대중내란음모 조작 사건으로 모두 24명을 엮어 옥살이를 시킨 시국 사건이었는데 고문에 못이겨 허위자백한 유일한 인물이 심씨였다. 당시 고초를 함께 겪은 인물로 현 여당 대표 이해찬, 작가로 변신한 유시민이 있다.

 

허위자백후 그의 인생은 사회생활에 전혀 막힘이 없었다. 중학교 선생도 했고 방송국 기자도 하며 잘나 갔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변신이 95년에 일어났다. 신한국당(오늘의 자유한국당 전…전신)에 입당해 안양 지역 지구당 위원장을 꿰차더니 바로 다음 총선이 있은 16대에 의원 뺏지를 달고 내리 5선의 중진 의원이 됐고 마침내 2019년이 저물어가던 12월 9일 제 1야당인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에 등극한다. 극우 진영에서 볼 때는 제 1세대 운동권의 대부이자 좌빨이 개과천선해서 보수우익 여의도 사령탑이 된 축하할 일이다.

 

그가 2018년 9월 말에 비인가 정부행정자료를 대거 확보하고는 청와대 업무추진비의 오남용을 지적하 며 정부를 부도덕한 정권으로 격하게 연일 비난했다. 엄청 시끄럽게 떠들기는 하는데 일일이 답하기도 갑갑하고 허접한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한밤중 회의하는데 왜 영수증이 맥주집 것이 나오냐 등등… (삼각 김밥으로 때웠으면 문제가 없었으려나…) 그럼에도 정부측은 거의 완벽하게 해명을 했고 사건의 본질은 심 의원의 불법 기밀자료 유출이라고 역공을 가했다. 궁지에 몰린 심씨에 대해 10월 3일 여당 원내 대변인 박경미 의원은 이렇게 논평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었다. 심재철 의원의 어제 질의는 전혀 새로울 것도 없고 이미 언론에 나왔던 이야기들이며 부총리의 치밀하고 설득력있는 답변에 아무런 반박도 내놓지 못했다.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 動 鼠一匹) …. 그러나 이번 심 의원 질의에는 쥐한마리도 보이지 않았으니 어쩌면 서일필이라고도 할 수 없겠다.』   

 

심씨에 관해 기억에 새로운 다른 두가지 사연도 생각난다. 2013년 국회본회의장에서 스마트 폰으로 누 드사진 감상하다가 방송기자 카메라에 딱 잡혔다. 쏟아지는 비난에 “누가 카톡으로 보내줘 뭔가 봤더니 그런 사진이더라”하고 옹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을 했다. 그는 당시 새누리당 최고위원 겸 국회윤리특위 위원이었다.  이후 2019년 5.18을 전후해 5.18 피해자 보상금 내역과 명단을 정확히 밝히라며 정부에 맹공을 퍼붓던 그는 자신도 피해자로 3,500만원이나 타먹은 사실이 알려지자 “다른 사람이 대신 신청해 준 것인지… 나는 모르는 일이다.”고 발뺌했다. 그러나 이를 어쩌나, 5.18 피해보상금은 본인이 아니면 절대 신청할 수 없다. 행여라도 명색이 제 1야당 원내대표가 치매증상이 있다면 국가 안위에도 바람직하지 않은데 은근히 걱정된다. 올해 4월 총선이 관전 포인트가 워낙 많아 벌써부터 기대되는 한해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