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과 함께한 게토레이의 역사

오늘날 편의점 채널에서 스포츠 음료로 가장 많이 팔리는 음료는 단연 게토레이다. 지난호 실협뉴스에서 다룬 스포츠 음료 기사에서도 밝혔듯이 이 음료의 편의점 채널 매출은 매우 양호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오랜만에 쓰는 교양상식 코너 주제는 지난호에 약속한대로 흥미진진한 게토레이의 탄생과 숨은 이야 기로 삼았다. 게토레이를 이야기하기 앞서서 편의점과도 밀접한 관계에 있는 몇개의 기업들을 살피는 예 비 지식부터 전한다. 이를 토대로 해야 게토레이 스토리가 전체로 꿰진다.
 

팹시코(PepsiCo, Inc.)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팹시 회사의 정식 명칭이다. 그러나 아무도 팹시코라고 부르지 않고 옛날 이름대로 팹시라고 부르며 회사명과 동일하게 브랜드명인 콜라를 지칭할 때도 팹시라고 부른다. 그러나 팹시는 콜라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팹시코라는 회사 명칭은 이미 1965년에 칩스의 황태자인 프리토 레이(Frito-Lay)라는 회사와 합병하면서 탄생했다. 이후 과일 음료의 대명사인 트로 피카나(Tropicana)라는 회사를 1998년에 인수했고 2001년에는 역시 종합식품회사인 퀘이커(Quaker Oats Company)를 인수해 오늘의 위상을 대체적으로 완성했다. 따라서 팹시라는 회사가 콜라만 팔아 유지되는 회사가 아니라 온갖 음료와 주전부리를 망라하는 다국적 종합식품회사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사실 팹시를 거론할 때 영원한 라이벌인 코카콜라 회사를 떠 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콜라 하나만 놓고 말하면 만년 2위의 팹시이지만 모든 취급 품목을 한꺼번에 놓고 말하면 팹시 그룹은 코카콜라 그룹 매출의 2배를 넘는다. (2018년 기준으로 매출이 팹시코는 640억 달러에 종업원수가 26만여 명이고 코카콜라는 310억 달러에 종업원수 63,000여 명이다.)
 

다음으로 팹시가 21세기가 시작되는 밀레니엄 첫해인 2001년 인수했던 퀘이커 오츠라는 회사를 간단히 더듬어 보자. 미국의 유서깊은 종합식품회사로 미국인의 아침 식탁에서 매일 만나지 않을 수 없는 시리얼 을 연상하면 이 회사의 위상이 실감날 것이다. 역사는 자신을 인수했던 팹시(1898년 창립)보다 20년 이상 앞선 1877년 오하이오에서 탄생됐다. 참고로 퀘이커 오츠는 퀘이커교와 아무 상관이 없다. 그냥 정직해보이려는 이미지 메이킹 차원에서 이름을 그렇게 달았을 뿐이다. 140년이 넘는 장구한 역사의 퀘이커 오츠의 이름을 더욱 빛내 준 것이 바로 이번호 교양상식의 주인공인 게토레이다. 1988년에 퀘이커가 게토레이를 인수했던 것이다. 그런데 게토레이를 소유한 퀘이커를 팹시코가 앞서 말했듯이 2001년에 인수했으니 결론적으로 게토레이는 오너가 팹시라는 말이다. 게토레이의 족보는 이쯤해두고 게토 레이라는 음료 탄생의 숨은 역사 캐기 라는 본연의 주제로 돌아가자.
 

게토레이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전세계 스포츠 음료의 아이콘이다. 그리고 그 어떤 스포츠 음료의 서열을 매기더라도 이 음료는 일단 제쳐두고 논해야 한다. 미국 스포츠 음료 시장의 거의 80%를 넘게 장악하고 있으니 요즘 잘나가는 전자담배로 말하자면 미국내의 쥬울(Juul)이라고나 할까. 전세계 80개국에서 마셔 대고 있다. 오늘날 잘 나가는 세계적 브랜드의 창대함은 더듬어 올라가면 그 시작이 다 미미하고 허접했듯이 게토레이의 시작도 그랬다.
 

이야기는 플로리다 대학교(University of Florida) 의과 대학 로버트 케이드(Robert Cade)교수로부터 시작된다. 1965년 40도에 가까운 폭염 속에서 이 대학 미식축구팀 ‘플로리다 게이터스’의 신입생이 일주일에 20명이 넘게 입원을 한다. 탈수증(脫水症)때문이었다. 하기사 가만있어도 땀이 주룩주룩 흐르는데 그 격한 운동을 연습하고 있으니 당연했겠다. 여하튼 이런 모습을 본 게토레이의 아버지 케이드 박사는 희한한 생각을 한다. “물 대신 땀을 마시면 어떨까?” 말은 된다. 탈수증은 결국 몸밖으로 땀이 과도하게 흘러나가 생기는 현상이니 그 땀이 고스란히 몸속으로 되돌아가면 증세도 사라지지 않겠는가.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더라고 박사는 학교 지하실에서 음료 작업을 시작했다. 땀에 있는 각종 염류는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인데 음료에 이 성분을 잘 배합해 넣으면 물보다 빠르게 흡수될 수 있을 것이라는 착상에서 완벽한 기능성 음료인 게토레이 첫 버젼을 만들었다. 나트륨, 칼륨, 설탕 등으로 조합된 것인데 다만 맛이 문제였다. 아무리 기능성이지만 그래도 입에 붙어야 목으로 넘기지 않겠는가. 그래서 레몬을 약간 짜 넣었다.
 

소금물처럼 찝찌레한 괴상한 맛에 레몬을 섞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생전 경험해 보지 않았던 게토레이의 요상한 맛은 바로 거부당했다. 감독 왈, “박사님, 우리 위해 고생한 정성은 고맙소만 1학년 신삥들한테만 마시게 하고 대표 선수들 한테는 절대 마시게 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살벌한 더위에 더럽게 맛없는 게토레이라는 음료를 마셔대며 뛰던 1학년 선수들이 2군 선배들하고 시합을 해서 전반전은 13대 0으로 대패하다가 후반전에 들어와 한점도 내주지 않고 오히려 역전승을 거둔다. 감독이 비로소 게토레이의 진가를 알아보게 된 순간이었다. 냉소적이 었던 그가 다음날의 시합을 위해 우리의 케이드 박사에게 100리터의 음료를 준비해달라고 당부했고 박사는 신바람이 나서 열심히 손으로 레몬을 짰다. 아직 이 기묘한 음료에 이름도 붙이지 않았던 시점이 었다.
 

 

 

 

 

 

 

 

 

 

 

 

 

 

 

▲1965년 당시 게토레이를 받아드는 선수들 표정이 웃긴다. 오줌물같은 맛으로 결코 반기고 싶지는 않았지만 14대 7로 이기고 나서 작명까지 해줬다. 게토레이를 따라주는 사람이 게토레이 발명가인  케이드 교수다.


 

다음날 날씨는 38도를 넘나드는 불볕더위, 음료의 진가를 자랑해보이기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날씨였다. 오줌물같다는 모욕을 당하며 선수들과 함께 한 우리의 게토레이는 이제 명예롭게도 게이터레이드(gator악어 + ade음료)라는 이름까지 얻었다. 이날 경기를 14대 7로 게이터스팀이 이겼기 때문이다. 이 이름은 오늘에까지 54년을 이어가고 있다.
 

비사 한토막. 당초 케이드 교수를 비롯한 음료 연구진에서는 gator + aid로 이름지을까도 생각했는데 aid라는 단어가 마치 치료제같은 느낌을 줌으로 인해 공연히 식품의약청(FDA)으로부터 시비거리를 만들 우려도 있고 상업화까지 내다볼 때 음료라는 의미의 ade라는 접미사를 붙이는 것이 두루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져 ‘gatorade’로 최종 낙찰을 봤다고 한다.(한국에서는 ‘드’발음이 사라지고 그냥 ‘게토 레이’라고 부르는데 상표등록때 이 발음철자로 등록시켰다. 이 글에서는 우리에게 익은 게토레이라는 한국식 표기를 계속 쓰겠다.)
 

해가 바뀐 1966년에 플로리다 게이터스는 역대급 성적을 냈다. 게토레이로 수분을 채우고는 희한하게도 뒷심을 발휘해 그 해 시즌에 8승 2패라는 놀라운 실적을 낸 것이다.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승리했다. 경기장에 싣고 가던 게토레이 트럭이 도난을 당한 해프닝도 벌어졌다. 다시 이듬해인 1967년에 플로리다 게이터스에게 패한 조지아 공대 풋볼팀 코치 바비 다드는  게토레이때문에 졌다는 다음과 같은 명언 (?)을 남겼다고 한다. “We didn’t have Gatorade. That made the difference.”
 

마침내 플로리다 게이터스의 활약은 게토레이를 모든 미식 축구팀이 마시는 스포츠 음료로 만들었다. 상업화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의 케이드 박사는 더 이상 손으로 레몬을 짜느라고 근육통에 시달리지 않아도 됐다. 박사는 승승장구하는 게토레이를 1969년에 통조림 식품 만드는 어떤 회사와 손을 잡고 공급 계약을 맺는다. 같은 해 라이센스 계약을 맺어 NFL공식 스포츠 음료로 지정받는 쾌거가 따른다. 프로 스포츠 역사에서 게토레이가 처음으로 스폰서쉽을 얻은 것이다. 게토레이를 탄생시킨 플로리다 대학도 지분의 상당 부분을 보유했다. 70년대에는 약 20%를 쥐고 있었으니 꽤나 큰 몫이었다. 2009년에 대학이 챙긴 수익은 1억 5천만 달러였다는데 대단하지 않은가? 이후로도 매년 배당금으로 1,200만 달러를 받았다.
 

앞서 언급한대로 몇몇 우여곡절을 거치며 시리얼의 대명사 퀘이커 오츠는 88년에 게토레이를 소유했던 회사 자체를 2억 2천만 달러에 인수하며 게토레이 오너가 됐다. 사세는 글로벌화했고 이미 84년에 캐나다 시장에 진출했고 87년에는 일부 유럽 국가에도 상륙했다. 호주는 93년부터 판매가 시작됐다. 96년 기준으로 전세계 45개국에서 총 매출이 2억 8,300만 달러를 기록했다. 97년의 경우는 10개국이 더 추가되면서 전체 게토레이 시장 규모가 20% 가까이 증가했다.
 

한국은 게토레이를 제일제당에서 이미 1987년에 받아들여 라이센스 계약하에 이천 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마켓팅에서 애를 먹었다. 이미 한국의 스포츠 혹은 이온 음료 시장은 동아식품의 포카리스웨트, 코카콜라 코리아의 아쿠아리우스, 롯데삼강의 스포테라 등이 틀어쥐고 있던 터라 절대적 열세였다. 원래 아성이 구축된 시장에 신생 브랜드가 비집고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하지 않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게토레이는 볼링장, 테니스 코트, 고속도로 휴게소, 핼쓰장, 목욕탕까지 취급을 선뜻 내켜하지 않는 틈새시장으로 파고 들며 공격적인 판촉 활동끝에 90년대 초반이 되자 대한민국 스포츠음료의 황제 포카리스웨트을 위협했고 92년에 마침내 포카리를 앞질러 수도권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게토레이 유명 광고모델로는 유인촌, 박상원이 있고 실제로 스포츠 선수인 박찬호가 90년대 후반에 전속모델을 맡기도 했다. 2001년 제일제당은 롯데칠성음료에게 게토레이를 넘겼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국에서 롯데가 제일제당으로부터 게토레이를 인수하던 같은 해인 2001년 다국적 식음료 회사 팹시코는 퀘이커 오츠를 130억 달러에 인수하며 게토레이 총본산의 임자가 또 한번 바뀌게 됐고 팹시코는 음료 시장에서의 위상을 크게 높이는 계기를 만들어 지금까지 잘 나가고 있다.
 

게토레이 샤워
 

스포츠 음료의 총아 게토레이는 의당 미국 스포츠의 위대한 순간들과 함께 하는 지위를 누렸다. 몇가지 기억에 남을 에피소드들만 소개한다. 1986년 뉴욕 자이언즈의 미들 가드인 짐 버트 선수가 플레이오프 진출 경기를 승리하자 고된 훈련으로 악명높았던 팀 감독 빌 파셀스의 머리위에 게토레이를 한 버켓 머리위로부터 확 부워버렸다. 승리를 자축하는 일종의 세레머니인 셈. 이렇게 해서 게토레이 샤워라는 말이 탄생됐다. 그해 수퍼볼 우승까지 파셀스 감독은 17차례의 게토레이 샤워를 맞고 수퍼볼 우승을 차지했다. 하기사 어느 감독이라도 우승만 한다면 게토레이 샤워를 10번 아니라 100번이고 맞고 싶을게다. 오늘날 게토레이 샤워는 다른 음료들로도 사용되는데 LPGA 우승자에게는 함께 경쟁했던 선수들이 생수 세례를 퍼붓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마이클 조던과 게토레이
 

농구 황제 조던은 어릴 때부터 게토레이를 즐겨 마셨다. 따라서 그가 게토레이 광고 모델이 된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코카콜라와의 계약이 끝나던 1991년 그의 나이 28세에 10년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그가 은퇴했든 야구로 외도를 했든 게토레이는 의리를 지키며 오랜 세월 모델로 내세웠다. 2003년 수퍼볼 광고 “23 VS 39”는 광고사에도 길이 남을 명 광고이자 농구의 신에게 바치는 찬사라 할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워렌버핏 일생의 최대 실수
 

의대 지하 실험실에서 손으로 만들던 게토레이가 미국 스포츠 음료 시장의 83%라는 경이적 점유율을 자랑하는 위상이 되다 보니 지구촌 음료시장 최대의 두 공룡의 하나인 코카콜라가 어찌 그냥 두고 봤겠나. 처음에는 게토레이에 맞서기 위해 이런 저런 신제품으로 싸워보기도 하고 파격적인 가격 경쟁력으로 대항해보기도 했지만 회사 이미지만 구겼다. 제품 경쟁으로 안될 때 가장 손쉬운 수단인 인수라는 카드만 남았다. 그래서 마침내160억 달러에 게토레이 소유의 퀘이커 오츠를 인수하려 했다. 그러나 주식투자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코카콜라 대주주인 워렌 버핏(Warren Buffett 1930 ~)이 이를 반대해 무산됐다. 2001년 이야기다. 당시 코카콜라는 지금도 팔고 있는 파워레이드로 시장의 10%를 고작 차지하고 있을 때였다.
 

경쟁사가 인수를 포기하자 펩시가 바로 “이게 웬 떡이냐”하고 나꿔챘다. 그것도 30억이나 낮은 130억 달러에… 사실 팹시는 코카콜라보다 한해 앞서 인수 딜을 물밑에서 주고받는 중이었다. 코카콜라가 게토레이를 가지지 못한 것은 오마하의 현자인 버핏 일생 일대의 실수로 회자되고 있다. 2018년 현재 미국시장에서 게토레이 점유율은77%, 코카콜라의 파워레이드는 뒤를 이은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