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투고(김윤배 회원)

손주의 돌잔치

어제 손녀의 돌잔치를 무사히 잘 치렀다. 별로 한 일이 없었는데 마치 꿈속을 다녀온 듯 마음이 어수선하고 정신이 없는 것같다. 오늘은 성당에 나가 미사를 드리지도 못하고 곧바로 가게로 내려와 허전한 마음으로 손님들을 맞으며 이렇게 글을 쓴다. 아마 내일이면 미국으로 떠날 딸 아이와 손주 그리고 사위 생각에 더 마음이 텅 비어지는 것을 느끼나보다.


모든 문화와 환경 그리고 언어가 다른 캐나다로 이민을 온 딸아이 성은이가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과정 중의 하나가 우크라이나 출신의 단짝인 카타리나라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친한 친구가 지난 금요일에 토론토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올 봄에 친구의 결혼식과 손주 돌이 가까운 시기에 있으니 토론토에서 친구 결혼식에 끝난 후에 이곳에서 손주 돌을 치루면 어떻겠느냐는 얘기가 나왔다. 그렇게하면 미국에서 결혼한 까닭에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셨던 가까운 친지분들께도 인사를 드릴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니 토론토에서 돌잔치를 하고 미국에서는 가족끼리 모여 간단히 돌상만 차리기로 결정되어 진행되었던 것이다.


 

잔치가 결정되면서 준비는 곧바로 시작되었다. 우선 장소는 북적대고 아무런 특색이 없는 음식점에서 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모던한 분위기가 풍기는 콘도 파티룸을 빌려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그 외의 준비는 주로 집사람과 딸 아이가 매일같이 전화로 의견을 교환하며 진행하였고 나는 중간에 한두번 끼어 들었지만 진부한 생각만 갖고 있는 나로서는 판잔만 들을 뿐 그냥 가게 일만 열심히 하였다.
 


돌상준비와 돌잡이 및 한복 등 모든 것을 준비해주는 이벤트 회사를 결정하고 사진은 전문가 수준의 외삼촌에게 부탁하자고 하니 외삼촌도 축하 하객인데 죄송해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여 별도로 사진사를 초청하였다.
음식도 세군데로 나누어 주문하였고 돌 케잌과 떡 그리고 디저트도 준비하였으며 커피는 아들이 향 좋은 커피를 골라서 갈아 내리기로 하였고 노래방이 되는 마이크까지 준비하였다.


잔치날이 되자 나는 가게에서 그날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서 싣고 올라오기로 하였다. 하나라도 빼먹으면 안되니 아침부터 카운타앞에 적혀있는 종이를 보고 챙긴다. 커피머신, 커피 보온통,  전기밥솥, 냉동 파이, 커피 내릴 물, 동전롤(풍선 매달으려고), 주문한 케잌 찿아가기 등등 하나씩 다 지워가며 차 안에 케익을 담을 박스까지 실어놓고는 준비 끝. 헬퍼가와서 바톤터치하고 곧바로 케익 집으로 향한다.

 


데코레이션용으로 아마존에서 주문한 큰 풍선 10개가 도착하여 사위가 두번씩이나 파티랜드에 가서 헬륨을 주입하여 갖고왔는데 크기가 너무 커서 한개를 못갖고 왔다고 한다. 나보고 오는 도중에 픽업해 오라는 연락이 와서 케익을 찿은 후  파티랜드로 향하였다.
 


큰 프라자 안에 있는 파티랜드를 발견하고는 주차를 하러 가는데  옆에서 갑자기 승용차 1대가 튀어나왔다. 나는 깜짝놀라 브레이크를 급히 밟았다. 그 순간 차 안에서 무슨 쿵 소리가 나서 처다보니 아~~ 아 뿔싸 조수석 위에 올려 놓았던 돌 케익이 바닥에 곤두박질 쳐져 있는게 아닌가? 가슴이 쿵 내려앉으며 손녀의 얼굴이 스쳐간다. 
 


실망할 딸아이 얼굴 그리고 호랑이같은(?) 마누라 얼굴까지 오버랩되어 지나간다. 얼른 케익을 올려 뚜껑을 살짝열고 들여다보니 한쪽이 완전히 뭉그러져 있었다. 일은 이미 벌어진 것. 풍선을 찿아온 후에 다시 케익집으로 향한다. 다른 것으로 준비를 하든 망가진 케잌을 수리 보수를 하든 일단 전문가한테 매달릴 방법밖에 없지 않는가? 케잌집 주인이 망가진 케잌을 보더니 기가 막혀한다. 너무 심해서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한다. 5시가 파티시작이니 어떻게 해서든 알아서 해달라고 떼를 쓰고 기다리고 있는데 방법을 찿았다고 한다. 눈물겨운 고마음을 느끼며 수고비를 지불하려니 안받는단다.  
 


벌써 모든 준비는 마무리 되어있었고 음식만 배달오면 된다. 손녀는 호수가에서 사진촬영 중이란다. 얼른 집에가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다시 파티룸에 가보니 음식도 다 도착하였고 손님 몇분도 벌써 와 계셨다.
6시가 좀 넘어 사위가 사회를 보며 잔치는 시작되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다같이 부르고 나는 손녀를 위하여 박두진의 시 '해' 를 낭송하였다.

 


손녀가 태어났을때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는데 주위를 밝고 환하고 따뜻하게 비추어주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들어서 이 시를 선택한 것이다. 돌잡이로 손녀가 마패를 잡으려고 하다가 너무 커서 잡지 못하고 엽전을 잡았다. 그 사이에 아들은 커피 내릴준비를 하고 있었다. 커피머신에 물까지 다 붓고 커피를 내리려는데 커피내리는 팟을 가게에서 안갖고 온 것이다. 또 한번의 실수로 힘이 쪽 빠진다. 아~ 이 바보! 팟을 안 적어 놓았다고? 어찌하랴.  방법이 없어 늦게나마 1층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왔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멀리서 오신 분들 그리고 갈 길이 바쁘신 분들이 한분 두분씩 멀어지면서9시가 좀 넘어 파티는 마무리되었다. 파티를 마치면서 아쉬움과 미련이 참 많이 남는다. 이처럼 조그마한 행사에서도 실수와 미련과 아쉬움이 이렇게 남는데 언제 어디서 무엇이 어떻게 닥쳐올지 모르는 우리 인생이라는 큰 잔치에서는 어떤 일이 더 벌어질까? 라는 생각을 하여본다. 

앞으로 얼마간의 시간이 나에게 주어질지는 모르지만 살아있는 동안 후회하지 않고 실수하지 않고 아쉬움이 남지 않는 삶을 살아가려면 지금부터 라도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다시한번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이 글은 작년에 손주 돌잔치 후 적어본 행사 후기이며 회원들과 감상을 나누고 싶어 실협뉴스에 게재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