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의 행복

우리 가게는 팀호튼과 동네의 작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치해 있다. 그래서 가게를 하다 보면 드물지만 손님들이 커피를 사오는 경우도 있으며 가끔 커피를 마시겠느냐고 물어오는 손님들도 있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통상적으로 일요일에는 헬퍼가 와서 문을 열어 주기 때문에 늦잠도 자고 아침을 먹고 성당에 가 미사를 드린 다음 가게로 가면서 밀튼 초입의 하비스에 들러 햄버거와 커피로 점심을 대체하고 헬퍼와 교대를 한다. 그런데 오늘은 헬퍼가 결혼 35주년이라고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를 쉬겠다고 해 아침 일찍이 집에서 나와 7시 30분에 문을 열었다.
 

가게 문을 열고 1시간쯤 지났는데 갑자기 커피가 마시고 싶어진다. 우리 손님 중에는 동네 사람들에게 신문을 사준다거나 로또 또는 커피 등 잡다한 심부름을 하여가며 짭짤한 팁을 챙기고 생활하는 친구가 한명 있어서 우리 가게도 자주 들락거린다.
 

바로 작은 길 하나만 건너면 팀호튼인데 워낙 바쁜 커피숍인지라 손님들의 줄이 항상 길어 쉽게 가지를 못한다. 그렇다고  가게문을 닫고 갔다 올 수도 없지 않은가? 전에도 한번 커피 생각이 나서 그 친구에게 부탁하여 마신 적이 있는데 오늘같은 날 그 친구가 오면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전광석화같이 머리속을 번뜩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다.
 

나는 얼른 동전과 셀폰을 챙겨들고 커피 숍으로 향한다. 가면서 가게에 설치된 시큐러티 앺을 눌러 독수리처럼(?) 가게 안팎을 들여다 본다. 커피숍이 바쁘면 돈을 먼저 지불하고 나중에 다시 픽업하러 올 계산을 하며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저쪽 한 귀퉁이에서 그 친구가 나를 보며 반갑다 인사한다. 다행히 커피숍이 바쁘지 않아 블랙을 주문하여 얼른 가게로 돌아왔다. 그동안 가게로 들어가는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아~ 우리가 지금 이렇게 좋은 세상에 살아가고 있구나. 우리의 생활을 이렇게도 편리하게 만들어 주는 첨단 하이테크에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끼며 가게 안으로 들어와 머그잔에 커피를 따라 한 모금 들이킨다. 와~ 번쩍 정신이 든다. 커피 한잔이 이렇게 혼미해진 내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깨우는 순간이다. 다른때보다 유난히 커피 맛이 향기롭고 좋을 수가 없다.
 

커피 한 잔의 행복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하며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살아야 되겠다는 희망을 안겨준 천양희의 시(詩) '직소포에 서다'가 떠오른다.
 

폭포 소리가 산을 깨운다

산꿩이 놀라 뛰어오르고

솔방울이 툭 떨어진다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는데

오솔길이 몰래 환해진다

<중략>

하늘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무한 천공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 와서 보니 피안이 이렇게 좋다

나는 다시 배운다

절창의 한 대목, 그의 완창을
 

천양희 시인은 1969년 정현승 시인과 결혼하여 이대 앞에서 양장점을 운영하며 살림을 꾸려 나가다가 1973년 이혼을 하였다. 그리고 다음해에 아이들과도 헤어지고 부모님과도 사별하며 그 누구보다도 험한 질곡의 삶을 살아온 시인이다. 1974년부터 5년동안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다 1979년에 삶을 마칠 생각으로 내소사에 있는 직소포를 찾아갔다. 그 폭포 앞에서 한참을 울다가 몇시간을 바위위에 눈을 감고 앉아 있는데 갑자가 장엄한 폭포소리가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어 젖히면서 환한 삶의 빛을 비추어 주는 것을 느꼈다. 그 환한 빛을 보며 '그래 다시 한번 살아 보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으며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1992년에 완성된 시가 바로 이 '직소포에 서다'이며 삶의 변곡점을 갖게 된 시인이 가장 아끼는 시가 된 것이다.


누구나 살면서 한 두번 쯤 삶의 고비가 있거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 고비를 슬기롭게 대처하고 현명하게 헤쳐나가야 한다. 평범한 일상속에 이러한 커피 한 잔의 행복을 즐기고 가족들과 함께 가슴에 새겨질 흐믓한 추억들을 만들어 가며 힘들때 나를 잊어버리게 만드는 취미 생활을 가질수 있다면 우리의 삶 은 더욱더 단단하고 활기차게 다져질 것이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우리의 삶에 어떤 흔들림이 오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앞만 똑바로 쳐다보고 걸어가는 완성도 높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