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에 얽힌 고사성어

2019년 대망의 새해가 밝았다. 기해년(己亥年) 돼지 해다. 그냥 돼지해도 아니고 ‘황금 돼지의 해’라고 하는데 아니 작년에는 무술년(戊戌年) 황금개띠라고 하더니 무슨 황금이 연이어 붙어다니는지 궁금하다. 사실 2007년 돼지해도 “600년 만에 돌아오는 황금돼지해”라고 어지간히 난리법석을 떨고 연말부터 시끌벅쩍했었다. 그런데 12년만에 또 황금돼지라니… 어쨌든 금붙이 싫어할 사람은 없으니 이쯤 해두자. 닭에서 개로 이어 이제 돼지해를 맞는 상황이 닭쫒던 개 지붕쳐다보는 심정들이 아니길 바라며 올해는 돼지꿈이라도 꾸기를 기대한다.
 

역술가들의 글을 보니 “기(己)는 들판이요 해(亥)는 호수라~” 물을 가진 들판이 어찌 풍요롭지 않겠는가 하여 이 한해가 풍요로울 것이라고  풀이한다. 참으로 듣기 좋~은 얘기다. 올해 실협뉴스 첫호 교양상식도 예년처럼 띠에 얽힌 고사성어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선 교양스러움의 기초 공사로는 무엇보다 단어 공부부터 철저히! 돼지를 의미하는 한자는 저(猪, 豬), 시(豕), 돈(豚)), 해(亥), 체(彘)가 있다. 올해 기해년에서 ‘해’(亥)가 돼지를 의미함을 알 수 있겠다. 다음은 돈가스로 일본에서 유래한 돈카츠(豚カツ)의 ‘돈’이 있다. 돼지고기를 의미하는 한자 돈(豚)에다가 영어의 포크 커트렛(pork cutlet)에서 포크는 앞의 한자 ‘돈’으로 대신했으니 날리고 커트렛만 일본식 발음으로 카츠레트을 붙였다가 그것도 길어 카츠만 남기고 합해진 것이 바로 돈카츠이고 이것이 우리 발음으로 돈가스가 됐다. 돈육(豚肉), 양돈(養豚)이라는 단어도 있다.
 

다음으로 저(猪)는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저돌적’(猪突的)이라는 단어다. 말 그대로 멧돼지가 앞뒤 안가리고 돌진하는 모습에서 나온 표현이다. 또다른 돼지인 저(豬)는 제육(豬肉)볶음이 있다. 원래 저육이라고 해야 맞지만 오랜 옛날부터 음운의 변화를 겪어 제육이라고 변했고 여기에 우리나라가 먹고 살만해진 1980년대부터 돼지고기로 볶음을 만들어 먹으면서 ‘제육볶음’이라는 단어가 일상화됐다. 또 다른 요리로 전라도와 제주도 고유의 요리인 애저회 또는 애저찜이라고 있다. 여기서 ‘저’가 바로 한자 ‘豬’이며 ‘애저’는 따라서 어린 돼지 또는 돼지 태아를 의미한다. 손오공이 나오는 서유기의 삼장법사 제자 저팔계(豬八戒)의 이름에도 바로 돼지를 의미하는 한자 단어 저(豬)를 쓰고 있다.
 

시(豕)는 단독으로 쓰이지는 안고 다른 단어의 부수로 많이 쓰이고 있다. 다만 아래에서 살펴볼 고사성어 ‘요동지시’ 에서는 글자를 온전히 사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체’(彘)는 체견(彘肩)이라는 단어가 있다. 돼지어깨살이다.
 

한자는 이쯤하고 우리말도 살펴보자. 우리말의 돼지는 어원적으로 ‘돝’이라고도 불렸다. 그리고 이 돝에다가 어린 것을 의미하는 ‘아지’가 합해져 (돝 + 아지) → 도야지→ 돼지로 변화되어 왔다는 설이 있다.  
 

돼지는 사람이 살아오면서 가축의 한 구성원이 된 이래로 수많은 세월을 사람 곁에서 줄곧 함께 살았다. 생각보다 인간의 말귀를 잘 알아먹고 영리하며 깔끔하다. 아무거나 주는대로 잘 먹고 우리안에서 대충 뒹글다가 알아서 크고 죽어서는 아마 털을 빼고는 온 몸을 다 고기로 인간에게 제공하는 고마운 동물이다. 심지어는 오줌보조차 못살던 어린 시절 시골에서 축구공 대용으로 인기를 누리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 못지 않게 인간의 입에서 개무시당하는 것이 돼지다. 개에 빗댈 때 꼭 돼지까지 콤보로 엮여서 “이런 개돼지만도 못한 놈”이라고 싸잡아 욕을 당한다. 또, 뭔가 어지럽고 지저분한 모습을 보고는 ‘개판’이라는 말도 쓰지만 ‘돼지우리같다’고 한다.그러나 인간이 청소를 안해 주고 방치해서 지저분해진 것이지 돼지 자체가 지저분하게 만든 것이 결코 아니다.돼지는 환경만 청결하면 똥도 한군데다가 누고 나름 깔끔을 꽤 떠는 동물이다. 그러니 애완동물로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키우고 심지어 껴안고 잠도 같이 자는 사람도 있다. 대표적인 인간이 헐리우드의 말썽쟁이 배우 패리스 힐튼이다. 물론 너무 빨리 커서 수개월 후에는 교체해야 하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여하튼 청결하고 귀여운 짐승이다.
 

그런데도 더럽고 탐욕스러운 모습을 묘사하면 꼭 돼지를 팔아 댄다. 우둔하고 미련한 것도 돼지요, 못생겨도 돼지요, 살이 쪄도 돼지요, 심지어 듣기 싫은 목소리도 돼지에 빗댄다. 온통 부정적인 표현 일색이다. 돼지에 대한 비하는 서양이 한술 더 뜬다. 마귀나 사탄으로 묘사할 정도이고 성경에도 돼지에 마귀가 들어가 있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서양 욕은 대부분 돼지를 들먹이면 가장 심한 욕이 된다. 그뿐 인가 이슬람 권에서는 아예 종교적 도덕적으로 혐오의 대상이 돼서 돼지고기를 절대 먹지 않고 있다. 부정(不淨)과 금기 식품의 상징이다.
 

개와 막상막하의 험한 대접을 받고 있는 돼지에 관련한 우리나라 속담을 몇가지만 인용해보자. “그슬린 돼지, 달아맨 돼지 타령한다.”, “똥 묻은 돼지, 겨 묻은 돼지 나무란다.” 이는 제 처지나 분수를 모르고 남의 안된 처지를 비웃을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처지에 가당치 않거나 어울리지 않게 과분한 경우에는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돼지 발톱에 봉숭아 물들인다.”고 한다. 게으른 성격에는 “마파람에 돼지 불알 놀 듯”, “일에는 굼뱅이, 먹는데는 돼지” 등이 있다.
 

아예 작정을 하고 돼지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표현은 없을까 찾아보니 딱 하나가 있기는 했다. 바로 ‘꽃돼지’라는 표현이다. 귀여운 아이나 사랑스러운 연인의 애칭이다. 그리고 유독 꿈에 돼지가 나타나면 길몽이라고 좋아라 하며 복권까지 사재낀다. 돈(money)과 돈(豚)이 발음이 같아서 유래된 것이라는 풀이도 있는데 그랬거나 말았거나… .
 

 

 

 

 

 

 

 

 

 

 

 

 

 

 

 

 

 

 

 

 

 

 

 

 

 

 

 

 

▲꽃돼지가 애완돼지를 껴안고 있다. 패리스 힐튼의 애완동물 취향은 참 가지가지다. 같이 잠도 잔다고 했다.


 

이제부터 별로 흔치 않은 돼지 관련 고사성어 몇개를 살펴본다.
 

 

■ 돈제일주 [豚蹄一酒]
豚 : 돼지돈   蹄 : 발굽제   一 : 한일   酒 : 술주 
 

“돼지 발굽에다 술 한 잔”이라는뜻이며 보잘것 없이 작은 것으로 너무 큰 것을 얻으려는 과욕을 힐난할 때 쓰는 고사성어다.
 

중국 전국시대때  강대국 초(楚)나라가 대군을 동원해 제나라를 쳐들어오고 있었다. 당황한 왕은 이웃 조(趙)나라에 구원병을 청하기로 하고, 그 임무를 학식이 높은 신하 순우곤(淳于髡)에게 맡겨서 둘러 떠나도록 했다. 그와 아울러 조나라왕에게 보낼 예물을 준비했는데, 나름 황금과 이런 저런 진기한 물품을 수레 10대에가득실어 준비했다. 그런데, 출발에 앞서 물품을 살펴본 순우곤이 한심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왕이 정색하며 이유를 묻자, 평소에도 비유를 들어 촌철살인의 표현으로 간하기에 능한 신하라 이렇게 답했다. “어제 신이 길을 가다가 풍작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사람은 ‘돼지다리 하나와 술한잔’ (豚蹄一酒)을 달랑 들고는 가을에 수확한 곡식이 자기집 곳간을 채우고 넘치기를 기원하고있었습니다. 손에 든 것은 그렇게 작으면서 원하는 것은 엄청나 한심한 생각이 지금 문득 들어 저도 모르게 웃은 것입니다.” 순우곤이 보기에 원병을 청하러 가는 절체절명의 처지에서 선물이 턱없이 빈약 해보여 왕을 짠돌이라고 은근히 책망한 것이다.왕이 알아 듣고 예물을 10배로 늘렸고 조나라가 이를 받고는 크게 원병을 지원해 놀란 초나라 군대가 급히 철수해 위기를 넘겼다.
 

 

■ 불안돈목[佛眼豚目]
佛 : 부처 불   眼 : 눈 안   豚 : 돼지 돈   目 : 눈 목

 

“부처의 눈과 돼지의 눈”이라는 말인데 어울리지 않는 두 댓구는 조선 태조 이성계와 그의 맨토인 무학대사(無學大師)가 마주 앉아 나누던 대화 중에 등장했던 유명한 표현이다. 태조가 한양으로 천도하고 정국이 안정되어 가자 평소처럼 마주 대한 무학대사에게 이성계는 흉허물없는 분위기를 만든답시고 무학대사를 돼지를 닮았다고 농을 던졌다. 그러자 무학은 태조에게 부처를 닮았다고 대응했다. 뜻을 몰라 이성계가 묻자 '부처님 눈으로 보면 부처로 보이고(佛眼佛示/불안불시), 돼지의 눈으로 보면 돼지로 보일 뿐입니다(豚目豚示/돈목돈시)'라고 대답했다.감히 일국을 세운 태조이지만 둘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고 하니 어지간히 사이가 돈독했던 모양이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라 하는데 행여 속이 꼬여 사물이나 사태를 악의적으로 보거나 삐딱하게 보는 사람에게 노골적인 질책을 하기보다는 “불안불시하고 돈목돈시하는 법이야” 혹은 간단히 줄여서 “불안돈목이로세~”라고 응수해주시라. 뜻을 물으면 타이르듯 일러준다. 그러면 상대는 존경의 눈빛으로 우러르며 틀림없이 교화될 것이다.
 

■ 요동지시[遙東之豕]
遼 :  멀 요   東 :  동녘 동   之 :  갈 지   豕 :  돼지 시

 

“요동 땅의 돼지 “라는 말인데 견문이 좁고 오만한 탓에 하찮은 공을 득의양양 자랑하는 상대에게 한방 먹이기 위해 쓰면 딱 어울린다. 별로 한 것도 없으면서 뭔가 대단한 것이라도 한 것인양 요란스레 자랑질을 하는 인간한테 “이런 요동지시같으니라구…” 하며 혀를 가볍게 끌끌 쳐주면 된다.  


때는 왕망이 권력을 찬탈하고 잠시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바람에 망해버린 전한(前漢)을 마감하고 후한 (後漢)을 세운 유수(劉秀) 광무제(光武帝)때 팽총(彭寵)이라는 인간이 있었다. 그는 광무제(光武帝)가 반군을 토벌하기 위해 하북에 포진하고 있을대 3,000여 보병을 이끌고 와 공을 세웠고 또다른 전쟁에서 군량 보급의 임무를 잘 완수한 바 있었다. 후한이 건국되고 논공행상이 있을 때 어양(漁陽)이라는 마을의 태 수(太守)자리를 제수받았다. 우리식으로 군수쯤 되는 자리였다. 그런데 팽총은 포상이 낮다고 불만을 품고 반란을 꽤했다. 그러자 대장군 주부(朱浮)가 그를 이렇게 꾸짖었다. 『그대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옛날에 요동(遼東)사람이 돼지를 키우고 있었는데 하루는 돼지가 대가리가 흰 새끼를 낳았다네. 처음 본 광경이라 희귀하게 생각하고 그 새끼돼지를 왕에게 바치려고 급히 하동(河東)까지 갔는데, 그곳의 돼지들은 다 대가리가 하얀 것을 보고 부끄러워서 얼른 돌아갔다네. 지금 그대가 그대의 공을 논한다면 폐하의 개국에 공이 큰 군신 가운데에서 저 요동(遼東)의 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렇게 훌륭한 비유를 들어 훈계했지만 끝내 말을 안듣고 제멋대로 왕을 참칭하며 맞서다가 2년만에 토벌당했다.
 

글을 마무리하려는데 2017년 대선 당시의 돼지 발정제 논란으로 코너에 몰려 대선 후보 지위가 크게 흔들렸던 레드준표 홍준표가 떠오른다. 2005년 발간한 그의 자서전의 한 대목에서 대학생 시절 친구에게 돼지 발정제를 구해 친구가 여친에게 먹여 잠자리에 성공하도록 모의했다는 화끈한 고백과 후회를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리 저리 말을 바꾸며 여론의 뭇매를 막으려 하다가 끝내 백기를 들고 말았지만 역시 한치의 흔들림없이 대선주자로 2위를 마크했고 패배하고도 당 대표를 이끌었는가 하면 최근 은퇴하는 듯 하더니 다시 자유한국당 대표 경선 주자로 재도전한다고 한다. 정치생명이 참 질기기가 소심줄같다.
 

 

 

 

 

 

 

 

 

 

 

▲돼지에 얽혀 정치생명과 공직생명이 끊어질 뻔 하다가 되살아난 불사조들. 오른쪽은 영화‘내부자들’에서 신문사 주필 이강희 역을 맡은 백윤식이 명대사 “민중은 개.돼지론”을 설파하는 연기 장면.
 

 

그런가 하면 지난 2016년 기자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민중은 개.돼지다”라는 발언으로 파면을 당했던 교육부 전 정책기획관 나향욱의 발언도 다시 생각난다. 그가 파면이 억울하다고 소송을 내 1심과 2심에 서 모두 파면 취소 처분을 받고 복직의 길을 밟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 것이 기억나는데 고위 공무원 또한 명줄이 질기기는 정치인 못지 않다는 씁쓸한 느낌을 지울 길 없다.
 

사족(蛇足) :  비만인 사람을 돼지같다고 하는데 이는 돼지의 돈격(豚格)을 모욕하는 발언이다.정상 체중의 남성과 여성의 체지방이 25 ~30%인데 반해 돼지는 체지방이 14%에 불과하다.삼겹살은 뭐냐구? 피하지방일 뿐이다. 게다가 삼겹살은 한국인에게 최고의 먹거리가 아닌가!돼지해인 올해만큼은 돼지에게 실례되는 비과학적인 발언은 삼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