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근대화와 노동음료 박카스

▲1966년 박통은 부하들과 의논끝에 그해 국정 슬로건을 ‘더일하는해’로 정했다. 그리고 더 일하다가 지친 산업 전사들의 에너지를 순간 충전시키는데 우리네 에너지 드링크 ‘박카스’는 큰 몫을 했다.
 

 

그간 실협뉴스 교양 상식을 통해 우리나라 전통주와 소주에 관한 소개를 한 바 있었는데 이번호는 無알콜 음료사에서 우리 현대사와 맥을 함께 한 가장 오래된 음료수를 한번 훑어볼까 한다. 18년 집권의 박정희 시대가 열리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리던 ‘조국근대화’라는 우렁찬 메아리와 함께 고고한 일성을 울린 음료였으니 이름하여 박카스!!!
 

자양 강장음료의 대명사 박카스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61년. 5.16군사 쿠데타가 있던 해와 동갑이다. 박카스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자본주의 그리고 노동의 역사와 궤를 함게 한다. 또한, 대한민국 에너지 드링크의 효시라 일컬어도 무방하다. 오늘날 에너지 드링크로 전세계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는 레드불(Redbull)도 박카스 맛과 유사한 태국의 크라팅댕(Krating Daeng ; 붉은 황소)에서 응용해 1987 년에 출시된 것이며 크라팅댕의 첫 출시는1976년이었다. 이렇게 보면 사실 대한민국의 박카스야말로 지구촌 에너지 드링크의 원조라고 주장하고 싶은데 유치한 민족자긍심일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까지 반세기를 훌쩍 뛰어넘어 57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박카스가 처음 부터 지금과 같은 음료수의 형태였을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하기사 워낙 오랜 세월을 박카스 병만 보고 살아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처음 나왔을 때는 알약 형태였다.그래서 박카스정(錠)으로 불렸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변변찮은 포장술로 인해 툭하면 알약 껍데기가 녹아 반품이 다량으로 들어왔다. 그래 서 이듬해인 1962년에 그림에서 보듯 작고 가는 앰플용기에 담아 유통시켰다. 하지만 이놈은 운반 과정도 그렇고 취급 중에 쉽게 깨지다보니 위험스럽기까지 했다. 이런 2년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난 1963년 에 비로소 지금의 모양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은 병에 담긴 박카스로 진화한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작명이 걸작이다. 박카스는 영어로는 bacchus이며 그 어원은 고대 술의 신(酒神) 바쿠스(Baccus)이다. 희랍에서는 디오니소스로 불렸다. 제약회사 동아제약(東亞製藥) 강신호(姜信浩 1927  ~ )회장이 처음 출시하기 앞서 뭐라 이름지을지를 고민하다가 참모들에게도 의견을 구했는데 그 저그런 민밋한 이름만 나오자 탐탁치 않았던 강회장은 보다 자극적이고 흥미를 끌 이름으로 ‘박카스’ 라 고 스스로 제안했고 그것으로 그냥 정해졌다. 직원들이 “박카스라 하심은 술의 신 바쿠스가 아닙니까?” 하니까 “노동자들이 쓰러지는 이유가 술때문이거든..”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마켓팅하기 딱 좋은 작명이라 여겨진다. 산업화가 본 궤도에 오르던 1960년 초부터 대한민국의 수많은 근로자들은 ‘일하는 해, 더 일하는 해’라는 국정 케치프레이즈 아래서 과로와 격무에 시달리며 지친 심신을 달래줄 마땅한 음료수가 필요했다. 물론 소주를 들이부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했지만 술은 술이고 약같으면서도 음료수로 부담없이 입에 털어넣을 마땅한 강장 음료가 꼭 필요하던 때에 박카스가 출현한 것이다.
 

음료 형태가 되고 나서 브랜드명은 ‘박카스 D’라고  ‘D’가 추가됐는데 드링크를 의미한다. 박카스가 나오기 전까지 동아제약이라는 회사는 그리 주목할 만한 위치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박카스 음료 하나로 불과 4년이 지난 1967년에 동아제약은 정상의 반열에 올랐다. 대개 유명한 회사들이 헤매다가 뭔가 대박 히트 상품 하나로 일류 기업이 되는 일화들이 많은데 동아제약이 바로 이런 경우였다.
 

이후 회사는 이 보배같은 음료수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광고 캠페인에 집중했다. 1970년 흑백 시절 TV광고는 이랬다. 『박카스의 맛과 캡이 새로와졌습니다. 따기 쉽고 위생적인 신형 피피 캡. 산뜻한 새 맛, 박카스 드링크. 뻥! (*뚜껑따는 소리. 마치 맥주병 따는 소리와 흡사하게 우렁차다.) 피로회복 간장 보호에는 동아제약의 박카스 드링크~!』또 다른 버젼도 하나 더 들어보자. 『치료못지 않게 예방도 중요합니다. 박카스 드링크! 박카스는 타오린 1000미리그람을 위시하여 대사촉진과 해독에 필요한 성분이 고루 함유되어 있는 의약품입니다. 정확한 함량, 피로회복, 간기능 보존에 동아제약 박카스 드링크 !』저 광고들이 나오던 70년 초에 박카스는 100원이었다.
 

광고에서 보듯 스스로가 의약품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니 약국에서만 팔았다. 박카스 광고는 성인은 물론 조국 근대화의 혹독한 노동으로 파김치가 되어있는 어린 직공들과 타이밍을 먹어가며 공부하는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피로 회복과 간기능 보호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정확히 호소력을 가지고 소비자들의 감수성을 파고든 성공작이었다.
 

그런데 산업 역군들의 감성을 기막히게 잘 터치해주던 박카스 광고가 시련을 겪게 된다. 조국 근대화에 그토록 기여하는 음료수였건만 박통은 무슨 연유에서였는지 박카스를 포함한 자양강장제라고 칭해지는 음료수 광고를 금지시킨다. 광고빨로 여러 경쟁사들 제품의 범접을 차단했던 박카스는 이로 인해 상당한 도전을 견뎌내야 했다.
 

그러다가 93년 문민정부 시절에 다시 광고 금지가 풀렸고 박카스 광고는 제자리를 찾았음은 물론 한차원 업그레이드 된 ‘새 한국인’ 시리즈 광고로 피로회복 음료시장을 재평정하게 된다.직업군별로 주제를 매칭한 시리즈 광고물이었는데 예를 들자면 환경미화원, 버스운전사, 대학생의 일상을 배경으로 삼아 마치 무슨 공익광고 느낌이 들도록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상업 광고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대박이었다. 아마 의도적 역설로 허를 찌른 광고 전략이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버스 기사와 대학생이 등장하는 새한국인 시리즈 광고 하나를 소개한다. 나레이션도 무슨 다큐 영화의 해설같 고 심히 공익 계몽적으로 들리면서도 호소력이 아주 강하게 다가온다. 『오늘보다 소중한 내일이 있습니다. (*운전기사가 종점 차고에 들어오면서 기지개를 한껏 켠다.) 지금의 피로는 산뜻한 기쁨 (*기사가 박카스 한병을 운전대 근처에서 꺼내 집어들어 마신다.) 박카스! (종점인데 뿔테안경을 쓴 대학생 한명이 계속 잠을 자고 있다. 기사가 다가와 깨우며) 이봐 젊은이, 피곤하지? 자 마셔(박카스를 건네며) (나레이션) 그날의 피로는 그날 푼다. 박카스 에프(F)!』
 

역시 성공적인 광고 캠페인이었다. 그런데 ‘박카스 에프’라니? ‘박카스 디’가 아니고 에프라니 이건 뭔가? 91년에 동아제약은 심기일전해보자는 의미에서 D 대신 F로 바꿨고 93년부터 광고가 풀리면서 ‘박카스 F’를 외쳐댄 것이다. F는 라틴어 forte에서 따온 것으로 ‘강하게’라는 의미다.  


새출발을 하며 승승장구하던 피로회복제 대명사 박카스에게  2011년 또 한차례의 위기가 왔다. 정부가 박카스를 비롯한 활명수의 지존인 동화약품 부채표 활명수 등 48개 의약품을 의약외품으로 지정해 약국 이외에 수퍼 등 일반 소매업소에서도 취급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면 판매 채널이 늘어났으니 좋아라 할 일이지 왜 위기가 되나 의아해 할 수 있겠지만 실상을 알면 이해가 된다. “진정한 피로회복제는 약국에 있다”고 기세등등 광고를 해왔던 동아제약은 이 조치로 인해 박카스를 가지고 수퍼나 편의점 등에서도 기라성같은 일반 인기 음료수들과 진검승부를 가려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실례로 일본의 한 잘 나가던 박카스 비스므레한 음료가 수퍼 판매까지 허용되면서 망한 사례가 있다. 판매망이 넓어진 대신 약국 이라는 정해진 울타리에서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일반 건강음료들과 대등한 경쟁을 벌이게 생겼다.


그리고 울타리 밖의 승부에서 최대의 강적인 광동제약의 ‘비타 500’이라는 제품과 맞닥뜨린다. 비타 500 역시 에너지 드링크의 일종인데 2002년 첫 출시됐을 때 박카스 못지 않은 주목을 받았다. 비타민을 음료 형태로 마신다는 것이 소비자들에게 매우 신선하게 다가갔다. 유명세는 익히 있었으나 늘 적자를 면치 못하던 광동제약은 이 제품 하나로 완전 대박을 치고 경영 정상화를 도모할 수 있었으니 제품의 위력이 대단했음에 틀림없다. 거기다가 이 제품 역시 광고 캠페인이 아주 잘 먹혔다. 초기 CF모델로는 인기 가 수이자 배우인 ‘비’, 그리고 원더걸스 등이 맡아 인기 짱이었고 이효리, 소녀시대도 이후의 모델들이었다.

 


 

 

 

 

 

 

 

 

 

 

 

 

 

 

 

 

 

 

 

 

 

 

 

▲비타 500 CF광고 모델이었던 이효리
 

 

2002년 첫해에 비타 500은 박카스 매출의 1/10에 머물렀으나 몇년 후 무서운 기세로 박카스 매출 절반을 뛰어넘었다. 물론 약국에서의 박카스 매출은 천하무적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종래의 박카스 D를 되살려 약국용으로 남겨두고 박카스F를 가지고 편의점 등 일반 소매업소에서 비타 500을 비롯한 여러 음료들과 경쟁하고 있다.
 

한편 박카스는 국내 시장만 호령하고 있던 것은 아니다.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해외동포들이 살고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쉽게 발견되고 있고 이곳 캐나다도 얼마든 박카스를 맛볼 수 있다.동남아 시장은 캄보디아가 교두보였다. 2009년에 이곳에 상륙한 박카스는 2011년에 52억원의 매출로 에너지 드링크 시장 1위 레드불을 추월했고 이후 무서운 기세로 뻗어 2017년에는626억원의 매출 실적을 올렸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박카스의 글로벌화에서 압권은 베트남이다. 사실 동남아 지역은 앞서 소개한 태국의 크라팅댕이나 현지 에너지 드링크들로 인해 진입이 쉽지 않았다. 베트남은2000년대 초부터 진출했지만 레드불이 압도적 인기를 끌고 있어 고전하다가 역시 “되는 놈은 앞으로 고꾸라져도 과부 배때기 위” 라고 베트남 축구의 영웅 박항서 감독 덕분에 돌파구를 찾게된다. 베트남 버전의 별도 포멧인 캔 음료로 만들고 박항서 감독 얼굴과 친필 사인을 박아서 대박을 치고 있다. 거기다가 박카스와 박항서는 발음이 아주 유사해 마켓팅을 절반 이상은 그냥 먹고 들어가니 이 얼마나 좋을쏘냐.

 

 

 

 

 

 

 

 

 

 

 

 

 

 

 

 

 

 

 

 

 

 

 

 

 

 

 

 

 

 

 

 

박카스의 매출은 2005년부터 최대 경쟁자인 비타 500과의 격차를 크게 벌이며 이후 지칠줄 모르게 증가해 2017년에 해외수출까지 총 2,787억원을 판매했다. 그리고 누적 판매량이200억 병을 돌파했으며 일렬로 이어 놓으면 지구를 57바퀴 돌 수 있는 물량이라고 한다. 편의점에서도 비알콜 음료 분야에서 박카스는 비타 500과 1, 2위를 다투며 편의점 음료의 대명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처럼 조국근대화의 음료이자 국민음료인 명예의 박카스에게도 한가지 본의 아닌 오명이 있으니 바로  ‘박카스 아줌마’의 존재다. 박카스를 판다는 구실로 주로 노인층을 겨냥해 슬그머니 다가가 성매매를 제안하는 풍속도가 노인들이 주로 모이는 공원에서 성행하고 있다. 박카스 아줌마 부대는 원래 그 시작이 남산 일대에 정차중인 택시 기사들을 대상으로 삼았다가 서서히 공원쪽으로 방향과 타겟을 바꾼 것인데 최근에는 지하철에서도 은근히 다가가 연령대를 무시하고 아무 남자나 접근해 박카스를 속삭인다고 한다. 모국 언론을 뒤져 보니 2015년의 풍경을 대충 이런 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종로 3가 지하철역. 40대 중년 여성이 한 남성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 팔짱을 끼며 “박카스 한병 마시고 가 오빠, 나랑 놀아… 싸게 잘 해줄께. 3만원…” 』90년대부터 시작됐는데 참으로 오랜 역사를 이어가고있다. 따라서 그 이전에 이민온 사람들은 박카스 아줌마가 무슨 요구르트 배달하는 아줌마같은 존재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결코 다른 성격의 아줌마 부대다. 동아제약 입장에서는 “왜 하고 많은 음료 중에 하필 우리 박카스냐”고 억울하기도 하고 난감하겠지만 뭐 달리 뾰족한 수도 없겠다.
 

송구영신의 시즌에 과음으로 고생하거나 음주운전하지 말고 술의 신 박카스를 마시며 대리만족하고 건전한 연말연시를 보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조국근대화의 노동음료 박카스와 함께 謹賀新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