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한 섬과 추한 대법원장

▲별칭으로 군함도(軍艦島)라 불리는 우리 아버지들 원혼(寃魂)서린 하시마 섬. 생긴 모양이 전범기업 미쓰비시(三菱)의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찍어 내던 군함과 비슷하다 해서 이런 닉네임을 얻게 됐다.
 

2012년 미국 뉴스전문 매체 CNN의 여행 색션에 매우 흥미로운 발표가 하나 나왔다.『세계에서 가장 으시시한 장소 일곱 곳』(7 of the freakiest places on th planet). 1위는 구 소련에서1986년에 발생한 역사상 최대의 원전 사고로 유명한 체르노빌의 놀이공원이 올라 있다. 원전 사고가 난 후에 오랜 세월 방치되다보니 그럴 법도 하겠다 싶다.
 

한편, 일본은 두군데나 있는데 자살자가 많이 일어나는 것으로 유명한 후지산 자락의 ‘아오끼가하라 숲 (Aokigahara Forest)이 그 첫번째다. 한 때 매년 이 숲속에서 자살자 시신이 수십구씩 나오기 때문에 ‘자살명소’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까지 붙을 정도였다. 그리고 또 한군데가 원폭 피해 도시로 유명한 나가사키(長崎)에서 바다 18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섬인 일명 군함도(軍艦島; Battleship Island)이다. 이번 호 교양상식에서는 이 섬에 얽힌 우울하기 짝이 없는 불편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2017년에 같은 이름의 ‘군함도’라는 영화로도 나왔으며 지나친 애국심 마켓팅을 내세운 나머지 역사 고증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일본 발음으로 ‘군칸지마’라고 불리는 섬의 정식 행정 명칭은 하시마(端島 ; Hashima Island).대표적인 탄광촌으로 50년대까지도 호황을 누리다가 1974년 폐광돼 수십년간 버려진 무인도였다. 그런데 지난 2009년에 나가사키 시가 갑자기 관광지로 선언했고 약간의 정비를 하고는 유람선이 다닌다. 딱히 볼거리도 없는 폐허더미를 돌아보는 관광객에게 가이드는 과거에 탄광으로 유명했으며 일본의 경제 발 전에 이바지한 대표적 산업 역사유적지라며 자부심 넘치는 해설을 쏟아낸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유령의 섬 군함도가 일약 관광지로 거듭난 것일까? 나가사키 시가 이런 설레발을 치던 같은 해에 일본 정부는 이 군함도와 나가사키 조선소를 포함해 20여 곳 이상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 명분은 메이지 유신으로 서구 문물을 잘 받아들여 산업 혁명을 일으킨 결과 오늘날의 경제 강대국 일본의 면모를 세운 초석들이 바로 이들 산업기지들이었다는 주장이다.
 

얼핏 일본 지네들 일이겠거니 무심할 수도 있으나 일본이 이런 짓을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바로 일제 강점기의 조선인 징용의 역사때문이다. 이 글의 배경인 군함도와 나가사끼 조선소는 모두 미쓰비스 소유였다. 미쓰비시는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전함 80여 척을 모두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제작했다. 또, 군함도에서 파올린 석탄은 제국의 야욕을 달성하기 위한 전쟁 물자 원료로 아낌없이 소비됐다. 그리고 그 채탄의 고된 지옥과도 같은 현장인 군함도에 동원된 우리들의 아버지들 800여 명 한이 서린 곳이다.
 

1938년.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는 요상한 취업알선 풍경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당시 일본 본토의 미쓰비시, 미쓰이 등 유명 전범 기업들이 조선 총독부에 인력 요청을 한다. 그러면 총독부에서는 지역 단위로 인원 수를 할당해 차출하는 강제동원이 이뤄진다. 이때 동원하는 일선 실무자들 또한 같은 조선인이다. 불편한 악역은 교활하게도 같은 동족에게 시키는 것은 일본만이 아닌 모든 제국주의가 써먹던 고전적 수법이다.
 

“임금 두둑히 주고 대우 잘해주니 겁먹지 말고 일본으로 가라” “한 2년만 고생하면 큰 돈 모아 온다. 여기 조선은 가뭄에다 밥 세끼 먹기도 힘든데 입도 덜고 돈도 모으고… 어쩌고 저쩌고…” 온갖 감언이설로 꼬여 15~20세 젊은이들을 반 강제로 끌고갔으며 죽어도 안가겠다고 하면 협박에 공갈을 내리먹여 결국은 강제로 끌려갔으니 우리는 이를 일컬어 ‘징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강제로 일본 군대에 끌고 간 것을 ‘징병’이라고 부르듯이.
 

당시 징용의 전형적인 장면을 조정래 작가는 그의 대하소설 ‘아리랑’에서 절절히 묘사하고 있는데 그 한 장면을 인용해본다. 『김장섭은 맥이 풀려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벌써 삼사년 전부터 사람들이 징용에 끌려 갔다. 해마다 그 수가 불어나서 조마조마하며 살았는데 결국 자신에게도 닥친 것이었다. ‘이 일을 어찌해야 좋은가…?’ 김장섭은 무슨 수를 쓰든 징용에 끌려가고 싶지 않았다. … 식구들과 2년씩이나 헤어진다는게 너무 불안했다. 노임을 준다는 말도 믿을 수 없었다. 그동안 속은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 김장섭은 집으로 가기 전에 한기팔 의 집에 들렸다. “아재, 시방 면사무소 다녀오는 길인디, 징용 나가게 되았구만요.” “뭣이여!” 한기팔이 소스라쳤다. “아이고메, 고것이 언제당가?” 월전댁이 부엌에서 뛰쳐나왔다. “낼 아침 7시다요”』
 

소설 속의 김장섭, 아니 현실의 군함도 강제동원 피해자의 한 분인 최장섭 옹은 그 고통의 한토막을 2014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고무로 만든 와이어를 기계에서 벗겨서 매를 만들어서 후려 치니까 피가 묻어나고 살점이 떨어지고 세상에, 우리한테 그것을 다 보여주면서… 차라리 자살하는게 낫지 우리 나이 다 열다섯, 열여섯 그랬는디…” 최 옹이 하는 말은 일이 너무 고통스럽고 배가 고파 행여 탈출이라도 했다가 붙잡혀온 조선인에 대한 일본 감독의 처벌 장면이다. 감히 반항은 상상도 못할 상황이 었기 때문에 영화 군함도를 본 그는 사실과 영화가 많이 다르다고 지적도 했다는데 올해 1월 92세의 나이로 한서린 세월을 가슴에 묻고 사망했다.  


같은 소설의 다음 대목도 당시의 징용 실상을 잘 묘사하고 있다. 징용을 피해 숨어드는 장정들이 많아지자 일본은 아예 대놓고 붙들어 갔다.『”전원 집합하라!” 이시바시는 야산 자락의 바위 위로 올라서며 외쳤다. 차에서 내린 경찰과 읍 사무소 직원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지금부터 우리가 사냥할 징용자는 300명이다. 1개 조를 4명씩 편성해 이틀 동안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그리고 조선인 경찰에게 경고한다. 같은 조선 사람이라고 사정을 봐 주거나 임무 수행을 철저히 못하면 가차없이 처벌할 것이다!” 이시바시는 외침과 함께 칼을 휙 뽑아 들었다. … 잡혀 온 남자는 마흔다섯이 넘어 보였다. “이거 어째 이려. 나는 벌써 4년 전에 일본 낭인들헌티 속아 규슈 탄광에서 2년 때우고 온 사람이여. 주재소에서도 다 아는 일이여!”』


두둑하게 쳐준다는 월급은 50엔 이상으로 꽤 괜찮은 수입이었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사기였다. 숙식비, 속옷 구입비, 세금, 건강보험료, 심지어 작업도구 대여료라는 명목으로 이리 떼고 저리 떼고 꼴랑 5엔이 남는데 이마저도 전시 공채 사라고 해서 실제로 받는 월급은 무일푼이었다. 실제로 앞의 최장섭 옹도 돈 한푼 못받고 귀국했다.
 

군함도 섬 위에는 당시로는 최신식 아파트에, 당구장, 극장, 목욕탕 등 일본인들을 위한 온갖 위락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6.3핵타르 작은 섬 전체가 화려한 미니 도시로 각광받고 있었지만 섬 지하, 즉 해저 1,000 미터까지 파고 들어가는 갱도는 평균 온도가 40도를 넘기고 비좁은 갱도안에서 누워야 채탄이 가능한데 하루 12시간의 중노동은 또 할당량을 채워야만 했다. 섬위는 일본인의 천국이 있고 섬 아래는 조선인의 지옥이 기묘한 대조를 이루며 징용으로 끌려온 조선 청년들의 말 그대로 막장 인생을 더욱 참혹하게 만들 고 있었다. 섬에 끌려온 조선인은 공식집계 800여 명이고 45년 일본의 패망때까지 섬에서 사망한 조선인이 확인된 것만 134명으로 밝혀져 있다. 툭하면 메탄가스 폭발에 갱도 붕괴가 다반사였으니…
 



 


 

 

 

 

 

 

 

 

 

 

 

 

 

 

 

 

 

 

 

 

 

 

 

 

 

 

 

 

 

 

 

 

 

 

 

 

▲징용 조선인이 군함도 갱도안에서 채탄하는 장면. 오른쪽은 또다른 탄광인 아소 탄광이라는 곳의 벽에 한 징용 조선인이 남긴 절규의 글.  


 

2015년 7월 5일 독일 본.  제 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심의가 진행됐고 일본이 무더기 신청한 23개 근대산업 시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최종 결정됐다. 2009년부터 은밀하게 공작질을 해서 마침내 결실을 이룬 것이다. 저 가운데는 징용으로 조선인을 끌어와 강제노역을 시킨 곳이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군함도와 나가사키 조선소 그리고 몇개의 탄광 등 모두 7개나 포함돼 있었다. 그래도 정부랍시고 한국은 일본의 이런 작태를 알고 철회시키기 위해 애쓰는 시늉은 했다. 비록 늙고 병들었지만 생존해 있던 징용 피해 노인들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항의에 나섰다. 그러나 일본의 간특함을 막아내지 못해 결국 인류 보편적 가치에 완전히 역행하는 부도덕한 산업 유적지가 세계문화 유산으로 버젓이 등재되는 기가막힐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역시 일본의 쇳가루 위력은 대단했다.
 

최종 결정이 있기 10여 일 전인 6월 21일 박근혜 정부의 칠뜨기 외교장관 윤병세는 도쿄에서 일본 외무상과 함께 한 자리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인정해주기로 했다. 대신 일본은 조선인 강제징용 사실을 일본 국민을 포함한 모든 일반인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일련의 조치를 성실히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며 악수하고 흐믓해했으니 한심해서… 이러니 이후 또다른 이슈였던 위안부 할머니들 문제를 돈 꼴랑 10억엔 받고 불가역적이라는 문구가 들어있는 말도 안되는 합의서에도 덜렁덜렁 사인을 했겠지…
 

일본은 등재 후 3년이 지나도록 군함도 관광지 입구 안내문에 조차도 징용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완전히 나몰라라 하고 있다. 일본이 배짱을 부리는 행태에 세계유산위원회가 올해 6월 27일 촉구 서한을 보내 당초의 합의를 이행하라고까지 했는데도 아직도 반응이 없다. 왜 이렇게 일본은 한국에 대해서는 유독 간이 배밖으로 나오는 것일까?
 

2012년 5월 24일. 대한민국 대법원이 징용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소송에 대해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있고 미쓰비시, 신일본제철 등 전범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한 역사적인 날이었다. 2000년과 2005년에 각각 시작된 소송인데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한 끝에 마침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감격도 잠시. 해당 일본 기업들이 재상고해서 다시 대법원에서 다루 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확정 판결을 미룰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일본 기업들의 재상고를 기각하고 자기들이 내린 원 판결을 그대로 유지하는 판결을 내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 당시 대법원장이었던 양승태(梁承泰 1948 ~)는 참으로 추잡한 짓을 한다. 일본과 가급적 고분고분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던 박근혜의 의중을 잘 간파하고 있던 양씨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면 박근혜 정부가 부담스러워지는 것을 우려해 알아서 긴다. 방법은 이유없는 고의적 재판 지연이었다. 마냥 끌다보면 고령의 원고들이 아마 사망하게 될 것이고. 실제로 외교부를 통해 한일 관계를 참작해달라는 은근한 압력도 들어왔다. 때마침 양씨는 자신의 대법원장 재임 시 상고법원 시스템 도입을 성사시켜 자신의 권력을 한껏 부풀리고자 하는 야욕이 있었다. 한마디로 재판 지연을 미끼로 딜을 시도한 것이다. 요즘 사법 농단이라는 말이 모국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데 바로 이 농단의 한복판에 양승태라는 추잡한 대법 원장이 있고 그 추한 사건의 결정판이 바로 징용 피해자 사건 최종판결 지연이었다. 같은 민족인 징용 피해자들의 원한과 민족의 자존심은 내팽개치면서 일본 정부와 기업들을 걱정해주는 이런 반역적 행태를 우리는 과연 어떻게 심판해야 옳을까. 평생 법조인으로 오만가지 추잡한 기록들을 철철 넘치게 남기고 구질구질하게 임기는 다 채운 그는 지난 2017 년 9월 22일 퇴임하면서 퇴임사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정치적 세력 등의 부당한 영향력이 침투할 틈이 조금이라도 허용되는 순간 어렵사리 이루어낸 사법부 독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말 것입니다.』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이다. 본인이 그런 짓을 했으니…
 

 

 

 

 

 

 

 

 

 

 

 

 

 

 

 

▲2016년 청와대 회동 시 두사람이 화기애애하게 건배를 하고 있지만 속마음은 이렇다. (양승태 : 징용 피해자 판결도 행여 일본하고의 관계에서 부담되실까 그냥 서랍에 푹 묵혀 두고 있어요. 상고법원 도입 좀 어떻게 허락해주세용~) (박근혜 : 내가 미쳤냐, 쓸데없이 니 권력 키워주게?)


 

2018년 10월 30일. 만시지탄이나마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사법 농단으로 5년이나 미뤄왔던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마침내 피해자 승소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면 뭐하나 원고측 피해 노인들은 재판 지연 5년 사이에 다 돌아가시고 딱 한 분이 남았다. 판결이 나오기가 무섭게 일본 정부는 즉각 발끈해서 불쾌감으로 수선을 떨었고 일본 외무상은 우리 대사를 불러 오만불손하게 딱딱거렸다. 이 런 간 큰 짓거리를 서슴없이 하는 데에는 바로 양승태같은 최고위층의 민족 반역자들이 대한민국에 득실 거리기 때문이니 자업자득에 유구무언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