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하는 미국 총기 사고

▲급증하는 학교 총기사고 참극에 마침내 아이들이 나서 개인 총기소유 금지를 요구하며 NRA비판 시위를 벌이게 됐다.


 

작년 11월 실협뉴스 737호 교양상식에서 “괴물이 된 NRA”라는 제하에 미국 총기사고의 비극과 실태를 상세히 살폈다. 그리고 미국사회가 그토록 참담한 총기 사고 인명피해를 끊임없이 겪는 두가지 이유로 NRA(전미총기협회)라는 조직 그리고 미국민에게 만연돼있는 집단 공포감을 들었다. 총기로 인한 참극에 대해 총기 휴대나 소지로 자신의 생명을 지키겠다는 결의가 더 공고해지고 있는 현상은 기막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요즘은 캐나다도 총기 사고가 자주 발생해 남의나라 일같지가 않다.
 

2017년 10월 1일 라스베가스 야외 공연장에서 기관총 난사로 인한 600여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 1주기가 다가오고 있다. 이번 교양상식은 1주기가 다가오는 당시의 비극을 새삼 되살리며 개인의 총기 소유와 관련한 법리 논쟁을 살펴 봄으로써 사태를 한단계 더 깊이 들어가 보고자 한다.
 

역시 예상했던대로 라스베가스 참사는 그때만 모두 심각한 척했고 수면아래로 가라앉았다. 금년 들어서는 학교에서 집중적으로 총기난사 사고가 발생해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기억에 남을 끔찍한 사건은 지난 2월에 플로리다의 한 고등학교에서 반자동 소총에 난사당해 17명의 학생이 사망한 참사였다. 뉴욕타임즈는 빈번하게 발생하는 학교 총기사건과 관련해 “과거에는 미국 학교에서 총성이 울리는 일이 드물고 충격적이었는데 지금은 항상 벌어지는 일이 됐다”고 개탄했다.
 

드디어 어린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다. 전국 주요도시에서 중.고생에 초등학생들까지 가세해 3월 중순부터 여기 저기 시위가 벌어지더니 마침내 3월 24일에는 시위가 미국 전역을 뒤덮었다.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800여 도시와 마을에서 시차를 두고 시위가 열린 것이다. 구호들도 다양했는데 학생들임에도 불구하고 핵심에 다가가는 정곡을 찌르는 요구가 등장했 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했다. “NO more NRA”, “No more guns” 앞의 것은 괴물이 된 NRA를 비난하는 것이며 뒤의 것은 더 이상 개인의 총기 소유를 허락하지 말자는 것이다. 학생들이 본질에 다가간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 특히 정치인들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것에 다름아닌 제스쳐만 쓸 뿐이다. 이해관계와 사심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성년자들은 그런면에서 감정에만 충실하니 실체적 진실에 훨씬 가까이 접근하는 용기가 발휘된다.
 

아이들이 부르짖은 저 두가지 슬로건을 깊이 새기며 뉴욕타임즈 지난 3월 27일자 오피니언 코너에 게재된 투고문 한편을 읽어보자. 길지 않아 완역을 했다. 글쓴이는 은퇴한 미 연방 대법관 존 폴 스티븐스씨다.
 


 

 

 

 

 

 

John Paul Stevens : Repeal the Second Amendment 수정헌법 2조를 폐하라!
 

 

 

『내 평생 이 나라 수도 워싱턴 D.C와 여타 주요 도시에서 지난 토요일처럼 어린 학생들이 주축이 된 시위가 벌어진 모습을 본 기억은 없는 것 같다. 이 시위들을 우리는 정중히 주목해야 한다. 우리 나라에서 총기로 인한 학생 집단 살해 참극이 벌어지는 위험을 없애기 위한 입법화를 요구하는 대중적 차원의 지지 시위다.
 

이 대중적 시위는 이 나라 입법가들이 반자동 소총을 개인이 소지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총기 구입 최저 연령을 현행 18세에서 21세로 상향조정하고 무기 구매자 모두의 신상에 관한 더 광범위한 정보 관리 체제를 요구하는 법을 제정하라는 명백한 신호이다. 그런데 시위자들은 이런 것보다도 더 효과적이고 오래 갈 수 있는 개혁을 요구해야 한다. 다름아닌 수정헌법 2조의 폐기(repeal of the Second Amendment) 가 그것이다.
 

국가의 상비군(常備軍)이 각 주의 안보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때문에 저 규정이 채택된 것이다. 수정헌법 2조는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잘 규율화된 민병대(well regulated Militia)는 자유로운 주(state)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따라서 인민이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할 수 있는 권리는 침해받아서는 안된다.” 오늘날 이 우려는 18 세기의 유물에 지나지 않는다.
 

저 규정을 채택하고 200년이 더 흘렀다. 그 세월 동안 저 조항은 총기를 관리 통제하는 주정부 혹은 연방 정부의 법제화 권한에 여하한 제약도 가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한결같이 이해되어 왔다. 1939년 대법원은 전원일치로 “의회는 총신을 짧게한 산탄총(sawed-off shotgun)의 소지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그 이유는 이런 종류의 총기가 잘 규율된 민병대의 유지 및 효율적 운영과는 아무런 합리적 관계가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총열의 길이가 18인치 미만인 총기류 소지를 규제한다고 민병대 유지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는 의미)
 

워랜 버거가 대법원장이던 시절인 1969년부터 1986년까지 내 기억으로는 연방 판사든 주 판사든 그 어느 판사도 수정헌법 2조에 대한 제한을 가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전미총기협회(NRA)와 같은 단체들이 저 규정에 대해 제한을 가하는 것에 반대를 하며 무기에 대한 연방의 통제는 수정헌법 2조가 부여한 시민의 권리를 축소하는 것이라며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워렌 버거 대법원장은 NRA를 가리켜 가장 거대한 사기를 저지르는 집단이라고 공개적으로 대놓고 비판했었다. 나는 그가 표현한 ‘사기’(fraud)라는 단어를 강조하고 싶다. 이 사기는 내 평생 이런 저런 특별한 목적의 이익 집단들이 대중을 상대로 저지른 최고의 사기 중 하나다.
 

그런데 2008년에 대법원은 워렌 버거 대법원장과 다른 판사들이 오랜 세월 굳게 이해해 온 수정헌법 2조의 제한적 적용이라는 전통을 뒤집는 판결을 내린다. 소위 ‘미연방정부 대 헬러 사건’(District of Columbia v. Heller)을 통해서 “개인의 무기 소지권에 제한을 가하면 안된다.”는 판결을 내렸던 것인데 나는 이 판결에 반대하는 소수 판사 4인 중 한명이었다.
 

그 판결은 지금도 나의 신념이지만 잘못된 것이며 명백히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것이었다. 그 판결로 인해 NRA는 엄청난 파워를 가진 선동전의 무기를 거머쥐게 됐다. 수정헌법 2조를 철폐하는 헌법 개정을 통해 저 잘못된 판결을 뒤집는 작업은 간단하며 그로써 NRA가 의회에서의 논의나 총기 소지 제한을 가하려는 건설적인 입법화 작업을 방해하는 로비력을 훨씬 더 약화시킬 수 있다. 헌법개정을 통하는 방법이야말로 그 어떤 다른 대안보다 낫다.
 

지금 말한 이 쉽고도 극적인 조치야말로 지난 토요일 시위자들이 추구하려는 목표에 그 어떤 가능한 개혁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 있다. 이것만이 지구상의 어떤 마켓에서도 볼 수 없고 미국에서만 가능한 무기 시장에서의 무기 상인만 보호하는 법 체계를 제거할 수 있는 대안이다. 이렇게 해야만 2008년 이후의 그 어떤 때보다 학생들이 더 안전해질 수 있으며 최근의 일련의 총기 범죄로 인해 발생한 정말로 많은 수의 희생자들을 추모할 수 있는 것이다. 』
 

이상 전직 연방 대법관의 애절한 절규다. 결론은 간단하다. 개인의 총기 소지 및 휴대의 헌법적 근거와 역사적 연원은 구시대의 유물이니 수정헌법 2조를 폐기하자는 주장이다.  
 

1775년 4월 19일. 메사츄세츠 주 보스턴 인근 렉싱턴과 콩코드에서 영국군을 맞아 식민지 미국의 민병대(militia)가 머스켓과 라이플 총으로 무장하고 교전을 시작하며 미국 독립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영국은 정규군이었으나 미국은 식민지였기 때문에 오합지졸의 시민들이 무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강의 군대라는 영국군과 8년간의 긴 전쟁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철철 넘치는 애국심때문이었지만 이를 뒷받침해 준 것은 라이플(rifle)이라는 신식총 덕분이었다.  
 

나선(螺旋)이 있는 라이플은 유효 사거리가 2배 이상 더 나갔고 또한 명중률이 매우 높았다.방어하는 입장에서는 돌격해오는 영국군을 숨어서 저격하기 매우 유리한 무기였다. 사실 모든 민병대들이 라이플로 무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주로 사냥꾼들이 이 총으로 무장해서 저격에 뛰어난 기량을 과시했다. 애국심과 라이플이라는 신식무기로 승리를 거둔 식민지 백성들은 마침내 13개 주가 연합해서 하나의 헌법 아래에 미합중국이라는 나라를 건국했다. 그리고 헌법 제정 4년 후에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새롭게 수정 헌법 2조라는 것이 추가됐다. 조항 원문은 이렇다.

 

 

 
 

 

 

 

 

 

 

 

 

 

 

230여 년 전인 1791년에 제정된 이 규정은 두가지 근거에서 당시로써는 의미가 있었다.
 

첫째, 연방정부의 권력 남용에 대한 방어권 확보였다.

미국 역사의 태동 자체가 그렇듯이 국가 권력의 전횡을 피해 이주한 후예들인지라 행여 연방정부가 권력이 비대해져 각 주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는 거대권력을 행사할까 우려가 깊었다.그래서 비록 독립 국가를 건립했으나 각 주(州 state)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주 정부의 무장권 보장을 헌법으로 명기한 것이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주 차원에서 민병대가 결국 무장할 수 밖에 없었으니 저렇게 표현한 것이다.
 

둘째, 공권력이 미치기에는 미국은 땅이 너무 커 개인 스스로가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절실했다.

안그래도 죄없는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커질대로 커진 땅덩이에 무법자 천지인 서부 개척까지 곁들여 영토는 무한대로 광활했다. 연방이든 주정부든 국가 공권력이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어렸을 때 열심히 봤던 서부 영화를 상기해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시민들은 각자가 동물이든 사람이든 외부의 공격을 스스로 막아내야 할 처지였다.
 

 

 

 

 

 

 

 

 

 

 

 

 

 

 

 

 

 

 

 

▲ 학교 총기 사고로 숱한 학생들이 사망하고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졌지만 그로부터 얼마 안된 지난 5월 5일 NRA는 텍사스 달라스에서 연차총회를 열며 총기 전시회를 가졌다. 한 고등학생이 라이플 신제품을 테스트해보고 있다.


 

자, 오늘날 21세기에 과학이 너무 발달해 걱정을 할 처지가 된 현재 저 두가지 배경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주정부든 연방정부든 공권력이 미국인의 일상적 삶에 구석구석 실핏줄처럼 깔려 영향을 미치며 개인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총을 소지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방어할 수단이 차고 넘친다. 911을 치면 경찰은 5분내에 출동한다. 초고속으로 모든 일이 진행되는 오늘날 저 두가지 사실을 근거로 수정헌법 2 조를 들이대며 개인의 총기 소지를 옹호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악한 이익추구 이외에 답은 없다.
 

총기의 성능은 200여년 전에 명사수가 1분에 3발을 쏘던 것이 지금은 1분에 800발이 나간다. 총격전은 전쟁터가 아니라 백화점, 길거리, 나이트클럽, 극장, 그리고 가정, 마침내 학교로까지 장소를 불문하고 벌어지고 있다. 라스베가스의 참사가 벌어졌던 작년 한해 미국에서 발생한 총기 사건은 52,000건을 넘었으며 하루 평균 44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가장 큰 피해자 그룹은 12~17세의 청소년이었다는 사실을 유념하자.
 

청소년들이 항의 시위때 흔들던 손피켓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Am I Next?” 사태가 이렇게 비감한 처지로 흘러가는데도 불구하고 참으로 어이없게도 미국의 여론은 수정헌법 2조를 폐지하지 못하겠다는 쪽이다. 금년 3월 이코노미스트가 여론조사를 했다. 수정헌법 2조 폐지,이는 다시 말해 개인의 총기 소지 금지를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 조항을 폐지하는 것에 찬성 21%, 반대 60%가 나왔다. 그리고 반대하는 이유를 물으니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미국에서 총기로 인해 아무리 비극적 참사가 그치지 않고 일어나더라도, 아동들까지 나서 총기 소지 반대 시위를 전국적으로 벌이더라도 미국 성인들의 총기에 대한 인식이 이런 수준이라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총으로 망하더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2017년 라스베가스 사건 이후 미국의 총기 판매량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사고가 나면 미국의 어른들은 수정헌법 2조 폐기라든가 개인의 총기소지 금지를 위한 백만 촛불시위를 벌일 생각은 하지 않고 총부터 열심히 사대니 총기 제조사들은 총기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흐믓한 미소를 짓는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고, 그러니 어서 더 많이 총기사고가 벌어지라고 고사를 지낼 것이다. 사악한 무기 제조사들과 국제 무기상들이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기를 바라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