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순미냐 섹시미냐”, 모델 미인열전

주인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살아 남은 대한민국 1등 소주인 진로를 둘러싼 이후의 소주 역사 아니 소주 전쟁사를 이어간다. 그것은 총성없는 전쟁으로 비유해도 조금의 과장이 아니다. 물론 진로의 아성을 감히 무너뜨릴 필적이 등장한 것은 아니다. 진로는 오늘날까지도 삼학과 같은 최강의 경쟁자를 다시 만나본 적이 없이 순풍에 돛을 단 범선처럼 잘 나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주변 경쟁자들의 공세에 자만할 수는 없어 수성에 공을 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타 경쟁사 제품 특히 ‘처음처럼’과 진로 사이의 일진일퇴 공방전은 한국 소주 현대사에 기록될 주목할 사건들을 남기고 있어 이를 훑어보면 매우 흥미진진하기까지 하다.
 

색깔 전쟁
 

우선 소주병 색상의 변화에 주목해보자. 거의 백색에 가까운 푸르스름했던 병색깔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그린 칼라로 변했을까. 초록병 소주의 첫 주인공은 1994년 두산에서 출시한 ‘그린 소주’이다.
 

두산은 그린 소주를 내놓기 한해 전인 1993년에 당시 강원도 소주를 대표하던 경월소주라는 회사를 인수했다. 그리고는 경월이라는 이름을 없애고 병색깔은 초록색으로 해서 ‘그린’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했으나 이듬해 일본으로 수출을 하면서 ‘경월’이라는 말을 다시 사용해 브랜드명을 ‘경월 그린’으로 굳힌다.
 

경월(鏡月)! “호수에 비친 달”이라! 일단 한자의 의미가 너무 운치있고 멋있어 일본 시장에 먹히기 때문에 되찾아 사용하게 된 연유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대한민국 소주 이름들이 참 멋드리고 시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진로, 경월, 보해 등등… 역시 이래서 작명이 중요하다.일본 수출도 수출이지만 병색깔을 그린으로 바꾸고는 국내에서도 엄청 잘 나갔다. 한때 시장 점유율 20%까지 차지하며 진로를 맹추격했다.
 

진로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병색깔에 대한 전통도 있어서 두산의 그린 컬러에 그리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 잘못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98년에 마침내 천하의 진로가 푸른색에서 초록색으로 병 색깔을 바꿨다. 또한 제조과정에서 대나무 숯을 사용해 자연에 가까운 소주를 만든다는 일대 맛의 변혁도 함께 단행했다. 그리고 이름도 영롱한 ‘참이슬’이라고 개명한다. 뜻은 똑같고 다만 한자냐 순 우리말이냐의 차이일 뿐 이다. 삼박자가 모두 맞아 떨어졌다.



 

 

 

 

 

 

 

 

 

 

 

 

 

 

 

 

▲일본에서 여전히 인기를 누리는 경월. 일본 유명 배우 이시하라 사토미의 경월 광고 CF


 

이렇게 해서 두산 경월그린의 진로 공략은 더 이상 진격을 멈추게 됐지만 수출만은 대단한 기세였다. 자료를 뒤져보니 2008년에 360밀리리터(현재 우리가 일반적으로 마시는 소주병 용량)기준으로 해외 수출이 1억 2,000만 병이었으며 전체 소주 수출의 50.6%를 차지했다. 이는 2005년부터 4년 연속 1위의 기록이었으며 같은 해 진로의 해외 수출은 1억 700만 병으로 점유율은 45.2%로 2위였다. 그 무렵 국내 시장은 진로가 51.4%, 두산은 11% 수준이었다.여하튼 두 회사의 해외 시장 주도권 싸움은 호형호제 형국이었으며 세월이 많이 흐른 현재까지도 경월은 일본시장에서 변함없는 명성을 누리고 있다.
 

이름 전쟁
 

70년이 넘도록 써온 ‘진로’에서 ‘참이슬’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것이 1998년 일이라고 앞서 말했다. 그리고는 천하무적으로 10년 가까이 잘 달리던 참이슬은 2006년에 ‘처음처럼’이라는 술과 맞닥드린다. 두산이 국내 시장에서 ‘그린’에서 ‘경월그린’ 그리고 ‘뉴그린’ 그다음에 ‘산(山)이라고 수차례 이름을 갈거나 신제품을 추가해봐도 영 시원찮다가 마지막 야심작 ‘처음처럼’을 들이민 것이다. 이름가지고 두산이 헤매고 있을 때 진로는 참이슬로 변신해 참신한 이미지와 왠지 환경친화적인 그린 컬러까지 모방해 대한민국 소주의 황제노릇을 하고 있던 차였다. “아줌마, 두꺼비 하나 더!”하고 찰지게 외치던 시절에 이어 “아줌마 ‘참이슬’ 한병더 !” 하고 외치는 시대가 왔고 ‘ 참이슬!’ 하면 뭔가 신선하고 쿨해보이는 느낌이 아무리 마셔도 이슬 마신 것처럼 취할 것 같지 않다. 이와 비슷하게 “언니, 여기 ‘처음처럼’ 한병 더!”하면 아무리 마셔도 처음처럼 말짱할 것만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진로가 적어도 작명에서는 강적을 만난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산의 ‘처음처럼’이라는 작명과 관련해 걸출한 두 인물을 소개해야 한다. 한 인물은 현재 대한민국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여성 국회의원 손혜원씨이고 또 한 인물은 2016년에 작고하신 신영복 교수다. 출시일은 다가오는데 여전히 작명을 못해 헤매던 두산이 당시 산업디자인계에서 브랜드 디자이너로 유명인이었고 사업가이기도 했던 손씨에게 이름하나 지어달라고 부탁했더니 ‘처음처럼’을 추천한 것이다.
 

문제는 ‘처음처럼’이 신영복 교수의 작품명이기도 하고 신 교수의 서체 그대로 ‘처음처럼’을 상표로 사용하려니 저작권을 침해하는 상황이었다. 신 교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저서로 수백만의 독자를 만들고 일반 대중으로부터 타계할 때까지 변함없이 큰 사랑을 받았던 사상가이자 저술인 그리고 서예가이기도 했다. 신영복 필체라는 것이 있을 정도였다.
 


 

 

 

 

 

 

 

 

 

 

 

 

 

 

 

 

 

 

 

 

 

 

 

 

 

 

 

 

 

 

 

 

 

 

 

▲신영복 교수의 작품 ‘처음처럼’과 그 서체를 사용하고 있는 처음처럼 브랜드 로고.


 

몸이 달아오른 두산이 신 교수를 힘겹게 설득했고 사례비를 받을 수 없다는 신 교수의 고집으로 결국 그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 1억원의 장학금을 기탁하는 것으로 해서 사용을 허락받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두산은 처음처럼으로 날개를 달고 소주 시장을 뜨겁게 공략해 진로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이후 2009년에 두산의 주류사업부문이 롯데 – 정확히는 롯데칠성음료 – 에게 5,000억에 인수되면서 경월에서 처음처럼으로 이어지는 두산과의 인연은 끝이 나고 소주 전쟁에 롯데가 끼어들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작명해준 디자이너 손혜원씨는 처음처럼을 추천하기에 앞서 진로를 ‘참이슬’로 개명해준 분이었으니 두 경쟁 소주회사 모두의 작명가가 된 셈이다.
 

입맛 전쟁
 

희석식으로 만들어지는 소주는 공통으로 주정을 사용한다. 그러니 맛의 미묘한 차이라는 것은 물이 좌우하는데 사실 엄청나게 자랑은 하지만 다 거기서 거기다. 처음처럼은 대관령 청정수를 전기분해해서 몸에 좋은 알칼리성만 취했다고 선전이 난리가 아니다. 참이슬은 대나무 숯을 이용해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한 깨끗한 소주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그런데 마시는 사람들이야 무슨 차이를 느낄 것이며 거기다가 여성 시장을 겨냥하고 전체 매출을 올리기 위해 알콜 도수를 자꾸만 낮춰가니 맛의 전쟁은 도수 낮추기 전쟁이나 다름없게 된 후로는 맛 차이가 평준화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17도 선까지 내려가 여기서 더 내려가다가는 도수 높은 와인하고 차이가 없을 지경이 됐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소주가 17도 밑으로 가면 소주 맛의 마지노선이 무너지게 된다고 하는데 지켜볼 일이다. 최근에는 업계에서도 너무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반성하에 복고풍이 불며20도 이상으로 높인 소주가 재등장하고 있다. 여하튼 도수 낮추기를 비롯한 제조공법으로 맛의 전쟁을 벌였지만 진짜 전쟁은 이런 메시지를 담은 광고 전쟁이다.
 

광고 전쟁
 

소주 광고에서 여자 모델이 등장한 것은 진로가 참이슬로 이름을 바꾼 이듬해인 1999년 ‘산소같은 여자’ 이영애부터다. 대장금의 이영애 말이다. 이는 소주 도수가 오리지널인 25도에서 조금씩 내려가 20도로 부드러워진 것과 때를 같이하며 맛의 부드러움이 여성의 부드러운 이미지와 매칭이 되도록 한다는 컨셉이었다.
 


 

 

 

 

 

 

 

 

 

▲초대 이영애로부터 김태희, 성유리, 아이유 등으로 이어지는 참이슬의 대표적 모델들.
 

 

참이슬은 기본 이미지가 초대 이영애로부터 이후 10여 명이 넘는 모델로 얼굴바뀜이 있었고 간혹 섹시미로 접근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단아하고 차분한 이미지로 일관했다. 심지어 한복입은 모델까지 있었을 정도다.
 

이에 반해 도전하는 처음처럼에서는 초대 모델이 이효리였다. 이미지 컨셉이 완전히 대조적이었다.
 

 

 

 

 

 

 

 

 

 

 

▲두산에서 롯데로 바뀐 직후 처음처럼 초대 모델은 이효리로 시작했다. 대표적 모델로 사진에서 보듯 신민아, 고준희, 현아 등이 있다.
 

 

사진에서 보듯 처음처럼은 건강한 섹시미로 참이슬의 단아함과 청초함에 맞섰고 이 분위기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애주가들은 이들 모델 사진을 라벨에서 찢어 술잔 밑에 붙이고는 효리주, 현아주 등으로 애칭을 달며 소주잔을 넘기는 익살까지 부렸다. 한국 소주 모델 미인열전에서나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광고업계에서는 소주 광고에 등장하는 여성 모델들이야말로 대한민국 최고의 모델로 분류하는데 우리 해외동포들 역시 한국식당에서 저들의 모습을 광고 포스터로 친숙하게 대하며 소주잔을 기울인다.
 

이렇게 여성 모델을 등장시킨 불꽃튀는 광고전은 오늘날도 여전히 이어지며 소주 애호가들의 맛과 눈요기를 충족시키기에 여념이 없다. 대한민국 소주는 참이슬과 처음처럼 이외에도 3위권을 마크하고 있는 무학의 좋은데이, 보해의 잎새주, 금복주의 참소주 그리고 이런 저런 맛을 가미한 변형 소주까지 거의 20종 가까이 된다. 그러나 당분간 앞의 두 소주가 전체 소주 시장을 견인할 것은 확실해보이며 이곳 캐나다 온타리오에서도 LCBO 선반에 그 위용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두개의 소주 참이슬과 처음처럼이 즐비하게 진열된 것을 보면 모국 소주시장 2파전 양상을 대리하는 듯하다. 그리고 이역만리 정부 독점 운영 주류판매점에서 한국의 소주들이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대할 때마다 조국애와 더불어 은 근한 자부심마저 느낀다. 대한민국 소주여, 전세계 방방곡곡 영원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