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음료가 얼음을 만난 혁명적 스토리

이번 호 교양상식은 9~10면에 걸쳐 다룬 “아이스크림과 슬러쉬” 제하 기사 말미에 예고한 대로 슬러쉬의 탄생 배경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룬다. 슬러쉬가 나오기까지 냉차의 역사는 얼음에서부터 시작돼야 전체 스토리가 모두 꿰어지기 때문에 예비 지식으로 얼음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천연 얼음덩이를 모양나게 잘 자르고 선박에 싣기 위해 말들이 동원되고 톱밥에 잘 묻히면 오래 보관이 가능했다. 왼쪽 사진은 얼음왕 프레데릭 튜더. 그는 공짜 얼음을 가지고 지금 가치로 약 2억 달러를 벌었 다고 한다.


 

열대나 아열대를 제외하고 지구촌 어디서나 흔해빠진 천연 얼음이 돈으로 사고 팔고 거래가 된 시작은 언제부터일까? 보스턴 출신의 프레데릭 튜더(Frederic Tudor 1783 ~ 1864)라는 인물이 동부 뉴잉글랜드 해안이나 호수에 있는 얼음을 이쁘게 잘 썰어 배에 싣고는 자기 나라 남쪽 – 주로 플로리다 – 부터 카리브 해안, 심지어는 인도까지 가서 팔아먹었다는 것인데 이거야말로 대동강 물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 미국 버젼되겠다. 몇주동안 운항하며 얼음이 녹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지푸라기로 싸기도 하고 촘촘히 톱밥으로 포장하는 등 당시 기술로 할 수 있는 나름의 아이디어는 다 동원해 꽤나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를 일컬어 보스턴의 얼음왕(Boston’s Ice King)이라는 칭호를 붙여 준 이유일 것이다.
 

1806년 나이 23세에 카리브 해안 마티니크라는 섬에 얼음을 팔아먹으려고 가져간 것이 첫 시도였는데 아무리 더워도 얼음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한테 상품의 진가를 이해시켜 팔아먹을 도리가 없어 첫 시도는 실패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하튼 공짜 얼음을 돈벌이의 상품으로 대량 거래해 전세계에 뿌렸고 그 후예들이 더 나은 지식을 바탕으로 더 손쉽게 인공얼음을 만들어(製氷) 발전시킨 것은 그 기원을 이 양반 한테서 찾는다. 천연이든 인공이든 얼음 거래는 19세기에 와서 시작된 사건이었다.
 

에피소드 1)  아이스 티의 탄생
 

때는 1904년. 당시 미 중부의 최대 도시라 할 세인트루이스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렸다. 리차드 블래킨든 (Richard Blechynden1857-1940)이라는 역시 미국의 사업가가 이 박람회에 참가해 홍차 홍보를 하고 있었다. 이 자는 거대한 차밭(tea plantation)경영주이자 소유주였다. 아쉽게도 박람회가 열렸던 여름은 무척이나 더운 날씨여서 더운 홍차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는 참관인들이 없었다. 차 홍보를 주목적으로 부스를 차린 것인데 소용이 없게 된 블래킨든은 홍차에 얼음을 채워 무료 시음을 시킬 착상을 하게 된다. 홍차는 더운 맛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것이다. 결과는 대박이 났다. 파리만 날리던 그의 부스에는 아이스 티(iced tea)를 마시겠다는 사람들로 긴 줄을 섰다.
 

영국은 정통과 예의, 에티켓을 끔찍히 따지던 나라였고 그래서 홍차는 반드시 데워 먹어야 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기 때문에 미국에서 탄생한 아이스 티에 대해 비판적이고 깔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국가 철학이 실용주의(pragmatism)아니던가? 편하면 그만이라는 리버럴한 생각은 두 나라 사고 체계의 근본적 차이를 낳았다. 쪄죽겠는 여름에 더운 홍차를 마시며 품위 운운하는 것 보다 얼음띄워 시원한 냉차를 먹는 것이 제격이다.
 

 

 

 

 

 

 

 

 

 

 

 

 

 

 

▲1890년 네바다에서 간행된 한 신문 기사 중 아이스 티에 관한 언급 부분.  초상화는 차 사업가 리차드 블래킨든


 

보통 미국에서는 아이스 티 탄생의 기원을 바로 위의 사건에서 찾고 있고 에피소드로 많이들 소개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사실과는 다르다. 이미 1890년대에 미국 남부에서는 차에 얼음을 넣어 냉차로 먹는 습관이 퍼지고 있었다. 더운 남부에서 차는 마셔야겠으니 실용주의적 사고에 따라 얼음을 띄어 시원 하게 먹는 방식을 택했던 것이다. 따라서 사업가 블래킨든씨가 아이스 티의 발명가라는 것은 과장이고 다 만 암암리에 퍼져있던 아이스 티 소비가 그 덕분에 본격적으로 대중화의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한 업적이다. 그의 깜짝 기지로 인해 미국 음료 트랜드에 획기적 전환점을 마련한 셈이니 역사가 그를 기억해줄 만하다.    
 

에피소드 2) 편의점의 탄생
 

얼음덩어리가 오늘날의 편의점을 탄생시킬 줄이야…. 역시 무대는 미국이다. 세븐일레븐의 시작이 현대 편의점의 시작이라고 하는데 맞는 이야기다. 그런데 얼음하고 편의점의 관계는 무슨 말일까? 1927년 텍사스에 사우스랜드(Southland Ice Company)라는 제빙회사가 있었다. 이 회사의 종업원 존 그린(John Green)이라는 사람이 일이 바빠 식료품점 쇼핑할 시간 내기가 힘들었다. 퇴근하고 식품점에 가도 식품점도 문을 닫으니 허탕이고 집에 남은 신선하지 않은 음식으로 저녁을 때워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머리를 탁 스친 아이디어가 “우리 회사 얼음공장 한켠에 식료품을 두고 팔면 어떨가? 음식도 신선도 를 유지할 수 있지 않겠는가?”하는 것이었다.
 

그린씨는 사장 조 톰슨(Joe Thompson)에게 이 구상을 이야기했고 사장도 동의를 해서 이웃 식료품점이 문을 닫는 저녁시간 이후에 얼음창고 한켠 공간을 만들어 생필품 먹거리인 우유,계란, 식빵 등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주민들이 몰려왔으며 얼음도 사고 필수 식품도 사갔으니 얼음공장이 편의점으로 변신한 것이다. 이듬해인 1928년 그린씨는 아예 사장한테서 얼음공장을 인수해버렸고 편의점 사업을 제대로 키 우면서 회사명도 Southland Corporation으로 개명했다. 이후 세월이 흘러 1946년부터 영업시간을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한다고 해서 다시 한번 7-Eleven이라고 개명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27년 얼음공장 Southland Ice Company(사진 왼쪽)에서 출발해 1946년 세븐일레븐으로의 개명이 현재에 이르고 있는 현대적 의미의 편의점 90년 역사가 느껴지는 사진들.


 

에피소드3) 아이스 커피의 탄생
 

 

 

 

 

 

 

 

 

 

 

 

 

 

 

 

 

 

 

먼저 아메리카노 또는 카페 아메리카노부터 살펴본다. 더운 커피 스타일 중에서도 왜 하필 이 단어가 생긴 것일까? 그 유래는 1773년 12월에 벌어진 보스턴 차 사건부터다. 미국 역사에서는 ‘Boston Tea Party’라고 한다. 식민지 보스턴 항에 차를 잔뜩 실은 영국 식민제국의 선박이 정박하고 있었고 동인도 회사가 독점하에 차를 판매하는 것에 저항하기 위해 선박을 습격, 수백상자의 홍차 상자를 바다에 버린 사건이었다. 이는 불과 몇년후의 독립전쟁으로 이어지는 단초가 됐다. 결국 이 사건으로 미국인들의 홍차에 대한 애정이 확 식었고 영국 수입차 불매운동이 벌어지자 그간 즐겨 마시던 차 대신 대체 음료로 커피가 갑자기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커피는 홍차에 비해 맛이 쓰기 때문에 농도를 비슷하게 하기 위해 기존 커피에 물을 타 희석시켜 마셨다. 그렇게 해서 미국 고유의 커피라는 의미의 아메리카노라는 커피가 등장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더해 2차 세계대전 유래설도 있다. 이태리를 점령하고 주둔해있던 미군 병사들은 이태리 커피인 에스프레소가 너무 진하고 썼던 때문에 이에 물을 타서 마셨다는데 이를 본 이태리 사람들이 “저런 무지랭이들 봤나. 멀쩡한 커피(에스프레소)에 왜 물은 타 먹나…”하는 다소 내리보는 분위기였다고. 그러면서 다소 비아냥끼가 섞인 표현으로 ‘아메리카노’ 혹은 ‘카페 아메리카노’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니까 ‘천한 미국식 커피’정도의 뉘앙스로 사용하던 것이 이제는 전세계에 다 통용되는 일상 용어가 된 셈이다. 그래서인지 정작 미국인들은 아메리카노라는 커피 명칭을 생소해하는 경우가 많다.
 

자, 커피에 물을 탄 아메리카노를 만든 이들이 그 아메리카노에 얼음인들 못 띄우랴. 그래서 앞서말한 홍차에 얼음타듯 아메리카노에도 얼음을 채웠으니 아이스 아메리카노(Iced Americano)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여담으로 원래 커피에 얼음을 타 먹는 방식은 유럽에서는 상상도 못했고 북아프리카 알제리에서 이런 스타일의 음료가 있었는데 이것이 미국으로 건너가 대중화됐다고 한다. 그런데 본격 대중화된 것은 던킨도너츠가 아이스 커피를 상품으로 내놓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에피소드 4) 슬러쉬의 탄생
 

 

 

 

 

 

 

 

 

 

 

 

 

 

 

 

슬러쉬의 탄생은 정말 우연한 사고에서 비롯됐다. 역시 무대는 미국이다. 1950년대에 미국 캔사스 시티.식품 사업가인 오마르 크네들릭 (Omar Knedlik 1915~1989)이라는 자가 냉장고에 탄산음료를 넣어뒀 는데 냉장고 온도조절장치가 고장나 살얼음이 생겼다. 그냥 평소처럼 시원하게 마시자고 한 것이 살얼음 냉차가 된 것이다. 그런데 크네들릭씨는 맛이 어떨까 궁금해졌고 먹어본 결과 놀라운 발명품임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래서 음료 제조 장치에 냉각기를 설치해서 만들어낸 살얼음 냉차 슬러쉬의 효시인 아이씨 (ICEE)는 이렇게 탄생됐다. 그는 살얼음 냉차 발명의 원조일뿐 아니라 바로 이런 제품을 만들어내는 제조 기의 최초 발명가이기도 하다. 저 유명한 ‘The Icee Company’는 ICEE가 실수로 탄생했던 같은 해인 1958년 크네들릭씨가 창업한 회사다.
 

시원하고 새콤하고 달콤하며 아이들에게 어필할 스포츠 스타나 영화속 캐릭터까지 홍보 판촉물로 보태지면서 미성년자 손님부터 사로잡기 시작한 슬러쉬는 이후 1966년 7-ELEVEN의 슬러피 (Slurpee) 라는 브랜드로 한층 더 대중화됐고 캐나다 편의점의 지존 맥스(Mac’s)의 프로스터(Froster)도 간판급 슬러쉬의 하나로 대중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들 슬러쉬를 냉동탄산음료(FCB ; Frozen Carbonated Beverage)라는 전문 용어로 칭한다.
 

이상 천연얼음을 거쳐 제빙시대를 지나며 얼음과 각종 차의 만남 그리고 실수에 의한 살얼음 냉차 슬러쉬에 이르기까지 여름철 더위를 식혀주는 얼음과 음료의 역사를 살펴봤다. 올 여름 회원들의 음료 장사가 대박나기를 기원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