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형인
 

*기고가는 1980년 초에 본부협회 제 5대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협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음

편의점의 애환을 잘 그려낸 ‘김씨네 편의점’이라는 작품이 처음에는 뮤지컬로, 그 다음에는 TV시트콤 시리즈 방영물로 그리고 마침내 영화로까지 나와 축제 분위기다. 작품은 시대적 요청에 부합했을 뿐 아니라 소박하고 털털한 배역의 주인공들이 순수한 인간적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 큰 반향을 불러모았다. 매우 창조적이고 탁월한 예술적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준 제작진은 물론 연기자들에게 이 기회를 통해 감사를 드리고 싶다.
 

나는 평론가도 아니고 작가는 더더욱 아니기 때문에 이민사의 애환을 그려낸 훌륭한 문화적 작품에 대한 평가나 감상을 자세히 언급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작품을 통해 우리들 이민사의 지난 과거가 회상되기에 불현듯 추억을 불러내 담담히 감상을 피력하고 싶을 뿐이다. 훌쩍 반세기 이 땅 한인 이 민사를 회고해 볼 때, 한마디로 말해 초창기는 물론 이날까지도 편의점이 동포 경제 활성화에 지대한 공 헌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한때는 한인 편의점이 3천 개에 육박하던 시절도 있었으니 한인 편의점 조직의 경제적 지위가 어땠는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을 것이다. 이 시절을 그냥 들춰보고 싶을 뿐이다.
 

60년대 중엽, 코너 스토어들의 운영권은 거의 유태인이 쥐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내부에 별로 쓸만한 상품도 보기 힘든 초라한 모습이었다. 원시적 구멍가게의 모형이랄까, 꾀죄죄한 골목 가게의 이미지를 면할 수가 없어 보였다. 그때 얼마나 다들 젊고 들끓는 열정이 넘쳐나던 나이들이었던가. 이 땅 이민 선구자 역을 떠안고 개척했던 파독(派獨) 산업역군들은 노동의 실체를 온몸으로 터득했던 강인함과 돌파력의 소유자들이었다. 더구나 천미터 석탄 굴 속을 휘젓고 다니며 다졌던 패기였으니 무슨일인들 겁나겠는가! 두더지처럼 땅굴을 뒤졌듯이 통달한 노동력이 땅 위에서 깨끗하고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무슨 일인들 못 할까보냐. 땅속만이 아닌 하늘밑 그 어디라도 무슨 일이라도 덤벼 성취할 수 있었다. 가게들이 마켓에 즐비했다. 저렴한 가격에 별 볼일없는 재고 역시 헐값에 인수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유태인들은 경제의 노하우가 태생적으로 몸에 배어 있는 민족임을 역사는 증명한다. 우리는 그들이 앞서 깔아놓은 기찻길로 그냥 내달리기만 하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헐값에 인수한 가게를 안고 우리의 끈질긴 민족성을 발휘한다. 부지런하고 친절한 자세앞에 누가 우리를 앞지를 수 있겠는가. 헐값으로 사들인 가게들은 인수하자마자 확 쓸어버리고 완전히 새모습으로 탈바꿈시킨다. ‘빨리빨리’ 습성이 제대로 진가를 발휘한 것이다.
 

컴컴하고 우중충한 실내는 환히 불을 밝혔고 구질구질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들은 몽땅 바꿔버려 신선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새로이 단장이 된 것이다. 넉넉하고 다양한 상품이 새 이미지를 뽐내며 선반에 쌓여있고 사람들끼리는 띵호아, 꼬메시타 아미고, 띠까니시, 비게츠, 도부로 유트로… 세계 인종들의 인 사말이 등장하며 웃음꽃이 피어나고 그런 가운데 불만이나 불평이 모두 한순간에 녹아난다. 그러면서 열 리는 것은 핸드백과 지갑이다. 바로 이 순간들이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장시간 노동에서 오는 피곤함을 달래주는 영양제인 것이다.
 

따뜻하고 친근한 마음으로 하이 캐롤! 하이 폴! 이름까지 기억해서 불러주고 태어난 나라의 인사까지 곁들여 반겨주니 담배 한갑만 달랑 사가지고 가게문을 나서기야 하겠는가. 계산대 앞에는 “언제나 기뻐하 라”는 성경 구절이 쓰여 있고 편리하고 친절한 편의점을 거의 매일 찾는 단골들의 이름과 출신국 인사말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가게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들의 피곤한 표정을 미소로 바꿔버리는 동네길 단 골가게로 거듭나는 것이다. 자조적 표현인 구멍가게들의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이제는 당당한 조직체인 실업인협회 소속 회원으로서의 긍지를 펼쳐야 할 것이다.
 

절망은 없다. 뛰는자에게는 걷는자의 속도가 느리다는 진리만이 보일 뿐이다. 아직도 내 눈에는 훤하게 밝혀진 희망의 길이 보인다. 온주 보수당 대표 더그 포드의 실언이라 할지라도 얼씨구! 편의점 맥주 판매를 허용하겠다고 하지 않는가!